199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오리엔탈리즘: 서양복식에 나타난 동양의 비전’이라는 전시가 열렸었다. 해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의상연구소에서 열리는 전시가 그렇듯이 이 전시도 탁월한 기획력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전시를 기획한 고 리처드 마틴은 “이제 우리는 동양적 요소 없이 현대의 옷을 생각할 수 없다”고 서문을 열고 중국, 인도, 근동, 중동, 일본, 동남아시아 등 동양의 복식이 서양 패션에 끼친 영향을 총망라하여 조명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복식문화는 23년 전의 이 전시에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한국복식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 서구 디자이너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2011년에 뉴욕의 디자이너 카롤리나 에레라, 2016년에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같은 해에 한국순회전을 가진 장 폴 골티에가 한복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한국패션 전시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해외 전시는 2015년 후반에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지금!’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한국 패션을 처음으로 세계 패션의 중심지 파리의 패션전문 미술관에서 전시하였다. 그 다음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국내 아름지기 재단과 공동 개최한 ‘우리의 옷, 한복’이다.
미국 최초로 독립적인 한국미술 부서가 설치된 미술관이라고 자랑하는 아시아 미술관답게 이 전시도 “미국 내 최초의 한국 패션 전시”라는 영예로운 꼬리표가 달렸다. 한국미술부서에서 선견지명을 갖고 오랜 기간 준비하여 얻은 성취이다. 이렇게 물꼬가 트인 이상 앞으로 미국 내에서 한국 패션 전시는 계속해서 다양한 각도로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의 옷, 한복’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물질 문화인 옷을 통해 우리 삶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게 한다. 또, 우리 옷에 보이는 진정한 한국적 특질은 무엇인지 탐색하게 한다. 한복의 원형은 조선 후기의 난숙했던 문화적 배경을 업고 짧고 타이트한 상의와 길고 볼륨감있는 하의의 독특한 실루엣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서구화를 거치면서 우리 옷이 일상복에서 밀려나고 서양복이 일상복을 대신했다.
무에서 이룩한 국내 기성복 산업은 1990년 즈음에 세계 패션 시장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발전했다. 진태옥 디자이너의 작품에는 양장 도입 후 키워 낸 자생기술력의 역사와 이즈음에 필연적으로 되찾을 수 밖에 없었던 한국적 미학이 녹아있다. 차세대 디자이너 임선옥, 정미선의 작품은 이제 우리 옷에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세계인이 입을 수 있는 일상복 패션이 가능하다고 보여준다.
이 전시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한복의 아름다움을 여한없이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저고리, 치마, 고름의 화려한 색채 배합, 고국의 자연과 건축물을 닮은 소매의 선, 뾰족하게 삐친 섶코, 버선코의 독특한 곡선, 손누비의 정갈한 바느질 솜씨를 통해 우리 복식문화의 자부심을 느껴 보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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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한국복식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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