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이맘 때가 되면 프렌치 빵이 생각난다. 우리가 살았던 곳의 이웃 사람들은 어린이 놀이터와 가까운 우리 집을 정거장이라 불렀다. 손님들은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정거장에서 잠깐 쉬어 가곤 했다.
유학을 온 남편과 함께 가도 가도 옥수수밭만 펼쳐진 일리노이주의 한 대학가에서 나의 결혼생활이자 미국 생활은 시작되었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었다. 어느 날 시장을 봐온 꾸러미를 정리하다 보니 프렌치 빵이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3살도 안된 녀석이 소파에 앉아 딱딱하고 긴 빵의 윗부분을 알파인 호른(Alpine Horn)을 불듯이 두 손으로 움켜쥐고 먹고 있었다. 이 귀여운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저 빵을 구워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했다.
도서관의 친절한 사서는 우리가 매번 빌려 가는 어린이 책 스팟(Spot) 시리즈와 어메리칸 베이킹 북(American Baking Book)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빌려간 책들을 줄줄 외우게 될 동안 빵 굽는 실력은 별로 나아지진 않았지만, 프렌치 빵만은 그럴싸한 모양과 맛을 내기 시작했다. 가족도 이웃 사람들도 빵 굽는 냄새를 좋아했다. 폭설로 휴교령이 내린 날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쿠키와 수제 피자를 함께 만들었다.
이웃과 정들자마자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떠나는 친구를 향해 무덤덤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빵 굽는 정거장 지기를 오랫동안 도맡아 했다. 뜻하지 않게 남편의 유학 기간이 다소 지연되면서 소리 없는 가난이 따라다녔지만, 꿈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가슴에 꽂고 지냈다. 습도 높은 찌는 듯한 더위가 몇 번 지나간 어느 해 초여름, 고생했던 남편의 손에 한아름의 싱싱한 꽃다발을 안겨주는 날이 돌아왔다. 나도 그 정거장을 떠나왔다. 외로움과 고통도 많았지만, 그곳은 추억의 빵 냄새가 나는 고향 마을 같은 곳이다.
우연히 동네 서점에서 그 책을 구입한 지 25년 이상이 지났지만, 밀가루 반죽이 묻어서 변색된 페이지를 요즘도 펼쳐 볼 때가 있다. 이제는 손이 많이 가는 프렌치 빵은 굽지 않지만, 놀이터를 핑계로 모였던 얼굴들이 그리워진다. 정호승 시인은 “내일이라는 빵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무거운 고통이라는 재료가 적절히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엔 오븐을 켜고 싶다.
<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