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9학년 영어 수업시간.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 풋볼 필드로 나가셨다. 수업의 주제는 ‘Setting Description’. 주변의 사물과 세상을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쓰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주신 규칙은 인간의 5가지 감각 중 Taste를 제외한 Touch, Hearing, Smell, Sight관점으로 묘사하는 것.
이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왜 4가지 관점에 대해서만 기술하라고 했는지 아는 친구 있나요?’ 몇 차례 이야기가 오가고, Taste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입맛은 서로 상이하고, 매우 주관적이다. ‘Setting Description’은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 시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술이기에 나머지 4가지 감각에 대해서만 기술하라고. 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있었던 상황을 Setting Description으로 작성 후 제출하기 전 내게 읽어보라며 건네주었다. ‘고등학교에서 이렇게도 수업을 하는구나!’ 이곳에 온 지 얼마 안된 내게 이곳 학교의 수업방식은 신선했다. 그날 선생님은 수업 주제와 더불어 또 다른 질문으로, 아이들에게 주관적인 시각과 객관적인 시각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이번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아이 중 다른 한 아이가 자신의 글도 가져와 읽어보라며 내밀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수업시간, 같은 선생님, 같은 시공간에 있었음에도 두 아이의 시각이 달랐다. 한 아이의 글은 내가 그곳 수업시간에 함께 있는 듯 빠른 템포로 디테일한 모습들이 그려졌고, 다른 한 아이의 글은 드론을 날려 하늘에서 바라보듯 느린 템포로 그들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듯했다. 글은 종이에 적힌 정적인 글자들의 집합에서 빠져 나와, 글 안에 속해 있던 세상을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공간을 파고 칩을 심어 놓는 듯 다가왔다.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관점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현상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잣대로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나였다면,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면,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점들을 발견하고, 쉽게 평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바로 가까이 있는 듯 다가가서, 때론 드론을 날려 보듯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김소형(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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