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추운 날 나도 속았다.
무시무시한 괴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향수와 정감이 물씬 풍기는 소풍안내 초청장이다. 흐르는 세월속에 시달린 종이는 색깔마저 바래져서 만지면 부서질 듯 하지만, 고색창연?
9월23일(토) 오전 11시란다. 장소는 로스 개토스의 Lake Vasona Park. 그당시 이지역 전통인 산호세 주립대 한인 신입생 환영겸 친선과 유대를 위한 모임이다. 주최는 산호세 주립대 한인 학생회 그리고 도움은 산호세 한인 학생 후원회라고 또박또박 손으로 쓰인 초청장이다.
아, 년대는 1972년이다. .....Let’s see, 2천에서 1972를 빼면 28. 거기에 17을 보태니 45가 나온다. 자그마치 45년 전 괴문서, 아니 초청장이 발견된 거다. 산호세 한인사회 역사를 보여주는 보물중의 하나다.
그 당시를 더듬어본다. 바소나 파크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학생회는 물론 어느 집 누구의 생일이라던가 무슨기념이라던가 그런 행사를 하면 자주 찾는 곳이 여기였다.
악수회가 생각난다. 그 당시 이 지역 한인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노인회였다. 우리 학생회 주최로 가끔 야유회겸 경로잔치로 흥겨웠던 자리도 주로 여기였다.
많은 일화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
어른들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 맥도날드의 빅맥. 그리고 이것저것 정크 푸드와 코카콜라와 세븐업 이런 걸로 모셨다가 된통 혼난 적이 한번 있었다. ‘이눔들아 궁물이 있어야지.’ 국물 난리가 난거다. 말이 국물이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띵땡똥 빙고 한곳이 ‘한국의 집.’ 그동안 주인이 몇 번 바뀌면서 지금은 ‘진미옥’이 되었지만 당시 이 식당을 운영하던 정미선 사장이 선뜻 몇 십 명분 설렁탕과 반찬을 자신의 복스왜건 노들밴에 두둑이 실어와 ‘위기’를 모면했었다.
1972년! 다시 이초청장을 잘 검토해보면 위에 말했듯이 손으로 쓴 글자다. 그당시 지금 우리가 알고 쓰고있는 탁상용 복사기가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본다. 분명 학교 도서관에는 아주 커다란게 있었다. 동전 넣고 때때로 논문이라던가 뭐그런것들 복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초청장은 돈 아끼느라고 한장한장 손으로 썼을 가능정도 배제할 수 없다.
썼다면 누구...?
초청장에 연락처를 남긴 이영일씨? 아니면 이선호씨? 그때의 호칭으로 불러 영일이가 썼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얌전이 미쓰 김? 공동 작품일수도 되겠다. 초청장 못지않게 정겨운 이름들이다. 다들 대학 졸업하고 결혼해서 애들 낳고 또 손주들도 보고 대부분 이 동네에서 잘들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복사기 없이도 잘만 살았던 것 같다. 셀폰이 없어도 연락들 못한 적 없다. 인터넷 없어도 정보기근에 굶어죽었다는 사람 들어본 적 없다. 말하자면 굿 올드 시절. 그때는 이 동네 행사가 크건 작건 가족분위기였다. 원족가고 소풍가는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삶은 계란과 김밥등도 누군가가 장만했다. 사이다 대신 세븐업. 때로 운 좋은 날은 종이 박스에 들어있는 진로 소주도 있었고...
요즘 인기 많은 연속극 ‘황금빛 내 인생’이 어쩌면 바소나 시절의 그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저무는 한해...’ 어쩌고 하면서 ‘다가오는 새해’ 에는 또 어쩌고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저무는 인생...’ 어쩌고로 무의식중 바뀌는걸 느낄 때도 있다. 그렇게 저물면 끝인데,... 게을러도 내년이 또와야 많은 미완성의 “미” 자를 굿바이 할 수가 있을 터인데...
아디오스 이공일칠
움매애.....
벤베누또 이공일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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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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