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날이면 보신각에서 울려퍼지던 재야의 종소리와 더불어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새해의 소망을 적어 타임캡슐에 담는 것. 여닫이 문이 달린 은색의 티라이트 랜턴은 원래의 용도와는 달리 타임캡슐이 되었고, 이것은 12월 31일을 보내는 우리 가족의 연례 행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사랑하는 아버님이 함께 하셨다. 타지에서 각자의 가정을 이뤄 삶을 꾸려가던 우리 자매들도 연말엔 한자리에 모여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소망 리스트를 펼쳐보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소망 리스트를 빼곡히 적었던 해에는 내가 무었을 썼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던 해도 있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펼쳐보던 기억들. 어떤 해는 이루고 싶은 일들을 다 이루지 못했기에 다음해로 이월된 소망도 있었다. 그곳엔 건강하셨던 아버님이 계셨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던 젊은 우리가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소망을 담았던 타임캡슐은 그때의 추억을 담고, 이제는 이 세상 속 시간을 넘어 별들의 시간 속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2018년 또 한 해가 밝았다. 글로 적은 소망을 담아 한해 동안 봉인되었던 타임캡슐은 이제는 핸드폰에 기록되어 수시로 꺼내보고, 성취도를 가늠하며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매해 함께 모여 소망을 적던 우리는 화상통화로 먼 타국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게 되었다. 시간의 단위는 인류의 편의를 위해 구분되고 이름 지어진 추상적인 개념일지 모르나, 사람들은 그 시간의 영역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올해와는 다른 내년을 기약하며 말이다.
그러나 매해 내가 자라듯 내 소망을 진화시켜 타임캡슐에 실어 보냈던 그 시절 이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적었던 소망을 이월시키듯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이월시킬 순 없다는 것이다. 그 시간은 우리 삶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영원한 순간이며,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소망은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의 불안을 잡아내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함을 말이다. 별들의 시간 속을 여행중인 타임캡슐은 올해도 새해 메세지를 담은 선물을 이렇듯 전해왔다.
‘현재를 소망하라. 매순간을 새해 새날과 같이’
<김소형(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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