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다행히 해가 나고 날씨가 좀 풀려서 해를 등에 받고 천천히 산책을 했다. 내가 캘리포니아를 사랑하는 이유는 한 겨울이라고 해도 낮에는 늘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가 있어서이다.
걸으면서 생각을 했다. 올해는 내가 또 어떻게 살까? 좀더 살맛나게 사람답게 살려고 생각이 미치자 며칠 전 신문에서 읽은 어떤 젊은이의 글이 생각이 났다. 그는 얼마 전 바쁘기만 했던 서울의 삶을 접고 강릉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 부부는 복닥이던 삶을 뒤로 하고 좀더 천천히 살기 위해 소도시를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득도 줄고 빠듯하지만 그대신 삶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전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는 여유와 소박하지만 조촐하게 마주 앉은 밥상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행복이란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행복이란 일상 생활에서 소소하게 얻어지는 지극히 작은 것들이라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철저히 공감을 했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한국이란 사회는 무엇이든지 일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류 학교, 일류 직장, 일등 신랑감, 일등 신부감이 아니면 이류들은 설 자리가 없던 사회다.
그런데 요즘 그렇던 사회가 슬슬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이 일류 직장들을 때려 치우고 자신들의 취미와 꿈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분수에 맞는 작은 가게나 소규모의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아니라 노는 놈이 더 성공한 놈이라는 얘기다. 놀면서 자신의 적성을 살려가며 살아갈 때 더 능률도 올리고 더 성취감을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일생 동안 한 직장만을 다닌다는 것은 옛말이 되고 있다. 그건 우리 세대 즉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작은 화단을 둘러보았다. 진달래가 몇송이 피어있었고 동백꽃도 봉우리가 맺혀있고 치자꽃도 하얗게 드믄드믄 피어있다. 땅속에서 뾰죽뾰죽 파란 구근들이 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정월 초하루 한 겨울인데 벌써 생명체들이 사방에서 소리치며 나오는 모습들이 앙짓맞고 귀엽다. 한때 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정원을 소유한 적이 있다. 매년 이른 봄이면 정원에 나가 올봄에는 어떤 꽃들이 나를 반길까 하며 매일처럼 꽃밭을 들여다보던 날들이 이젠 아득한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그때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고 사람들이 우리 정원을 볼 때마다 ‘이곳은 정말 천국이군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젠 공동 소유의 작은 정원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그 행복의 차이는 별 차이가 없다. 이렇듯 인간이란 존재는 적당한 때가 되면 포기할 줄도 알게 되고 적당하게 타협할 줄도 아는 좀 이기적이지만 약삭빠른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올해 팔십이 된다. 여지껏 참 바쁘게 살아왔다. 이젠 좀 천천히 살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아무리 내 삶이 팔십 마일로 달려 간다 해도 나는 이제 브레이크를 걸 작정이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살면서 결국은 가야 할 그곳에 천천히 도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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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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