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사로웠던 초여름, 나는 서울의 성북구 동선동의 가파른 계단을 지나 오르고 또 오르고 있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니 빛 바랜 파란 고무화분에 심어진 보라색 붓꽃의 무리가 이쪽이라며 길안내를 하듯 눈빛을 붙들었다. 그날은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권진규의 아뜰리에를 찾아나선 길이었다. 그는 박수근, 이중섭과 더불어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아뜰리에는 그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부서지던 시간이 그대로 공존하듯 느껴졌고, 또한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공간이었기에 고요함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시간 여행을 이곳에서 또 다른 거장을 통해 다시 경험하게 되고, 더군다나 나에게 울림을 주던 권진규의 인물작품의 실제 주인공을 만나게 될 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한 달에 한번, 나는 문학 아뜰리에에 간다. 그곳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반기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분들의 이야기들 듣고 있다보면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꽂히며, 나도 모르게 펜을 들고 노트에 적거나, 노트를 안 가져간 날은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에 메모를 하게 된다. 그곳은 내게 20세기 초 카뮈, 피카소,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드 플로르’와 같은 곳이다.
바로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 20년을 함께 이끌어오신 SF한문협 모임. 그곳에선 나이도 시간도 불안도 잊는다. 무엇보다도 열정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구상 조각가 권진규가 찰흙으로 빛은 테라코타 작품 “예선”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이 모임을 만들고 이끄시고, ‘에뜨랑제여 그대의 고향은’,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 ‘무반주 발라드’ 등의 저자이신 한국여류문학가 신예선 선생님이시다.
SF한문협에서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남프랑스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고 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와 고흐의 도시 아를도 들리시리라.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권진규의 작품 “예선”을 통해,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해 지금처럼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이다.
“나는 아픔을 털고 일어났다. 장미의 정원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미의 정원에 더 많은 빛깔의 장미를 심기로 했다” –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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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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