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춘의 억울한 죽음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였다. 잔인한 고문으로 목숨을 잃게 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정부는 단순한 쇼크 사망으로 축소해서 넘겨버리려고 했다. ‘탁자를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는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영화 <1987>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우울했다. 이 모든 사건이 불과 30년전의 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가리워진 길’이라는 잔잔한 곡이 흘러나오며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천천히 올라갔다.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뒤로하고, 옆에 앉아 있는 친언니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 당시의 학생이었다면 과연 시위 할 수 있었을까?” 언니와 나는 같은 대학교를 진학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래된 역사로 유명한 UC버클리는 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하는 학교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밀로 야노풀로스(Milo Yiannopoulous)와 같은 우파(Right-wing) 정치인이 학교에서 스피치를 하려고 하면 수십명의 경찰들과 방송국은 벌써 학교 주변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시험 기간과 무관하게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캠퍼스의 건물은 부서져 있고, 나는 길을 지나가기 위해서 뿌연 가스로 가득한 곳을 걸어가야만 했다.
“지금도 안하고 있잖아” 우리가 그 당시의 학생이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언니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시위를 한다고 세상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1987> 영화 속의 ‘연희’와도 같은 학생이었던 것이다.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관한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왜 굳이 미국에서까지 시위할 필요가 있냐며 한인 학생들의 비관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나는 ‘탄핵(Impeachment)’이라고 적혀 있는 포스터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은 그 포스터 주변에 몰려들어서 큰 관심을 보였다. 그중 몇 명의 학생들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더니 한국에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보기도 하였다.
하나의 촛불이 결국에는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었던 그 기적을 나는 보았다. 미국에서까지 시위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변화와 기적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1987>영화 속의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2018년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다.
<장선효(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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