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안개로 자욱한 거리는 몽환의 세계에 들어온 듯 불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속도를 줄여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 듯 설레는 마음을 안고 거리로 스며들어갔다. 그것은 익숙한 거리에서 만난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안개가 걷힌 후엔 다시 그 자리에서 익숙한 풍경을 만나리라는 것을. 그렇게 익숙한 것들은 아무 의심없이 다가와 의식의 기저에 머무르다 문득 낯선 시공간을 만날 때면, 무의식의 세계에서 깨어나듯 주변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몇 달 전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Ji의 공연이 산호세 Trianon Theatre에서 열렸다. 구글 안드로이드 캠페인 광고 속에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두 대의 피아노로 번갈아 연주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는 등장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클래식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예복이 아닌 구겨진 하얀 면 소재의 셔츠, 맨발의 캐주얼화에 칠부 바지를 입고 손에는 몇 장의 하얀 악보를 들고 있었다. 바흐의 30개의 Goldberg 변주곡을 시작으로 라벨과 쇼팽의 음악이 연주되고 중간 브레이크 타임 후 몇 차례의 곡이 더 진행된 후였다.
다음 작품은 존 케이지(John Cage)의 <4’33”>. 그러나 그의 두 손은 무릎 위에 나란히 올려져 있었다. 음악이 있어야 할 공간에 음악이 사라지자 숨 죽이듯 고요할 것 같은 공연장은, 이내 또 다른 소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뒷사람의 발놀림, 의자의 삐걱거림, 옆사람의 숨소리까지 작은 인기척들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공간을 채워나갔다. Ji는 연주 대신 손을 위로 들었다 내려놓거나, 피아노 위에 놓인 하얀 악보를 넘기다 다시 내려놓곤 했다. 이것이 Ji가 공연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였다.
이 곡은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가 1952년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4분 33초 동안 실은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아트 퍼포먼스이다. 대신 그 시간 동안 공연장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소리가 연주가 되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4’33”>를 이론으로만 접했던 내게 <4’33”> 공연을 직접 경험함은 내 안의 무의식의 일깨움이었다.
음악소리가 멈추자 주변의 소리는 증폭기를 타고 더욱 크게 다가왔고, 소리를 담은 공간은 점점 더 팽창하듯 느껴졌다. 다음 음악이 시작되자 멈춰졌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며 의식은 익숙하지 않았던 세계로부터의 배움을 안고 다시금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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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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