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틀랜타를 경유해서 시라큐즈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환승까지 열여덟 시간이 넘는 긴 비행이었다. 그렇지만 호기심과 긴장, 그리고 악천후가 겹쳐 긴 여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이제라도 막 추락할 듯 하늘에서 몇 피트씩 뚝뚝 떨어졌다 올라가길 반복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바로 옆에서 번쩍이는 번개가 우리 비행기를 내리찍지 않기를 몰래 기도했다. 그러다가 비행이 좀 안정되는 것 같으면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둔 영어 문장을 틈틈이 외우거나, 간혹 수천 피트 아래의 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도 했다.
긴 비행 끝에 만난 시라큐즈 공항은 무심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영화 ‘터미널’에 나오는 크고 세련된 공항을 기대했던 나는 마치 한국의 작은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모습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어디로 나갈지 두리번거리는 사이 곧 반가운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목적지는 아직도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대체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얼마나 먼 곳일까. 하늘은 찌뿌둥했고 소나기를 변덕스럽게 뿌려댔다. 까만 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신호등이 혹 차 위로 떨어지진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2차선 국도 좌우로는 넓은 구릉과 살찐 젖소들, 반질거리는 말들이 보였다.
한 시간 남짓 달리자 드디어 ‘City of Ithaca’ 팻말이 보이고 곧 구름 사이로 반가운 햇볕이 뚫고 나왔다. 지난 몇 달 간 사진으로 보아왔던 2층 짜리 대학원 기숙사가 햇볕 아래로 드러났다. 붉은 벽돌 건물의 진한 녹색 지붕 너머로 무지개가 벙긋 웃고 있었다. 그 무지개는 소낙비에 세수라도 한 듯 개운한 모습으로 큼지막한 반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오직 가능성과 시작만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며 씨를 뿌렸더랬다. 작은 싹이라도 트면 요란하게 박수를 치던 기쁨이 있었다.
풋익은 꿈과 자부심, 어설픔 덕에 치른 실수와 교훈들, 서로를 달래던 짙은 우정도 기억의 시간 속에 켜켜이 흩뿌려져 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담궜던 그 시간들은 이제 짙은 향을 풍기는 추억이 되었다. 일상이 지루해지고 물에 고인 듯한 느낌이 진해질 때마다 나는 미국 처음 오던 그 날, 그 시간들을 꺼내어 본다. 그 날들은 과연 내 긴 이방인 삶에 새 힘을 주는 마중물 같은 기억이다.
<한연선(교육학 박사 AB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