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어떡해, 이를 어떻게 하나?”
한창 졸업 시즌인 작년 초겨울, 자그마한 체구에 한 여자손님이 인터넷을 보고 왔다며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우리 세탁소에 찾아왔다. 주섬주섬 가방속을 뒤지더니 커다란 졸업가운과 사각모자를 카운터에 꺼내 놓으며 하는 말 “too big!”, 처음에 난 누구의 가운인지 몰랐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가 졸업하기엔 나이가 들어보였거니와 차림새가 초라하기까지 해서 의아해하며 얼마나 크냐고 묻는 순간 그녀는 얼른 가운을 입었다.
‘어! 본인 거!?’ 고개가 갸우뚱, 어울리지 않는 옷주인? 그도 그럴 것이 그 옷은 석학사 가운이 아닌 소매에 띠가 둘러진 박사학위 가운이였다. 약간 놀라 전공을 물었더니 법학 박사란다. ‘법학 박사!’ ~헐, 순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모르게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마도 몰라 보았던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바로 박사님이 아니던가. 그것도 법학박사! 그녀 역시 고맙다며 이내 거울 앞에 서서 가운 이곳저곳을 줄여 달라 했다. 커도 너무 큰 그녀의 가운과 얼굴 두배만큼한 사각 모자, 옷과 모자를 반으로 줄여야 할 듯했다.
일주일이란 시간과 함께 가운과 사각모만 남기고 그녀는 갔다. 바느질도 서툴고 오른손마저 편치 않은 터에 웬일인지 내 손으로 고처주고 싶었다. 아주 정성껏, 수선은 옷 길이 줄이기를 시작으로 소매통과 소매길이 줄이기를 할 때였다. ‘쭉~ 앗! 찢었다’ 그것도 소매 한가운데를 말이다. 울고 싶었다. 그리고 몇번이고 후회가 됐다.’왜, 내가 했을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찢어진 소매를 볼수록 기가 막히고 막막했다. 우여곡절 끝에 수선은 끝났고 약속했던 그날 그녀의 손엔 내 큰 실수로 고쳐진 가운이 제법 폼나게 포장되어 들려갔다. 내 작은 걱정도 매달려서 말이다. 며칠 후 그녀가 쿠키상자를 들고 감사하다며 찾아와서는 졸업사진을 보여줬다. 반가웠고 더구나 큰 안도감에 지나친 호들갑을 떨며 “so good, so good!”을 남발했었다. 아마 찢어진 옷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거다.
오늘도 그녀가 다녀갔다. “친구들이 내 졸업가운이 너무 보기 좋았다”며 연신 고맙다 한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다’는 옛말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 나를 수선박사로 생각할거다. 살다보면 실수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때론 놀라운 발견이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실수는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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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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