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송구할 따름이다. 친구같은 선배로부터의 큼지막한 소포 꾸러미와 손편지를 앞에 놓고 난감해한다. 그 흔한 카톡으로 몇마디 전하면 될일, 또 오다가다 만나면 전해주어도 될일이다. 글자 하나 하나에 묻어있는 애정어린 마음과 담백한 겸손에 고개 숙일뿐 내가 받은 이 정성이 내게 합당한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조차 보내온 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뿐이다.
홀 안의 빽빽한 의자들을 채우기엔 턱없이 적은 관객이다. 청소년 재능 기부단과 세종시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협연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연주는 전혀 쭈삣거림없이 당당하고도 열심이어서 감동스럽기까지하다.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아우르면서 지휘자는 흩어져 있던 각각의마음들을 한데 모아 단 하나로 뭉쳐버린다. 위안부를 언급하며 마지막 곡으로 애국가를 연주할 때 ‘동해물과 백두산이…’관객들의 노래소리엔 울컥임이 섞여있다.
‘행복하니?’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묻는다. ‘응, 아주 좋아.’ 그런데도 내맘은 무겁기 짝이없다. 누가 아들의 근황을 물어오기라도 하면 화제는 걷돈다. 정작 본인은 재밌고 좋다는데 왜 나는 더불어 좋지 않은건지… .아들의 행복감과 나의 불행감의 차이, 바로 그 만큼의 간격은 아들을 향한 내 욕심이 만들어낸 것임이 분명하다. 그 욕심의 무게로 짓눌리는건 다만 내 마음일뿐이다. 습기차고, 덥고, 춥고, 가파른 계단, 너덜너덜 벗겨진 페인트의 옥탑방을 ‘괜찮구나 ‘ 할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갈구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동네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유클립투스 숲 속을 걷는다. 은은한 나무향을 깊이 들이마시고 신발바닥에 폭신한 낙엽 덮인 흙의 감촉을 느낀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은 눈부시고 나무가 떨구어놓은 그늘이 오솔길을 따라 저 앞으로 멀리 이어진다. 그늘을 밟으며 가는 나는 모처럼의 행복감으로 가슴이 차오름을 느낀다. 그렇구나! 우린 저마다 나무여서 이렇게 서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행복할수 있는것이로구나! 내게 소포를 보내온 이도 하나의 나무요, 연주하던 아이들도 지휘자도 모두가 각각의 나무이며, 내 아들도 가장 가까이 서있는 나무여서 나는 그들이 있어 그들의 향기로 행복할 수있는 것…
그러니 다만 누리자. 온 천지에 나를 위해 베풀어진 사랑을 주워 담자. 일부러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베풀어져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항상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어물어물거리다간 끝내 내뱉지 못하고 다시 삼키곤한다. 그 말을 내 뱉는 순간 변질되어버릴것만 같은, 예감같은 이상한 힘에 휩싸이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사랑의 참 의미를 전 인생을 통하여도 제대로 알 수 없으리라는 그 깊이에 대한 경외감에서 차마 가볍게 뱉어내지 못하는 것일게다. 또한 사랑이 사람들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물질을 사고 파는데 쓰이듯 마음을 대상으로 거래되는 교묘함을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요즘처럼 흔해빠진 사랑한다는 말을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람의 자기애를 충족시켜주는 최적의 말로, 기쁨으로 들뜨게하고, 만족감으로 충만케하고,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주고, 훈훈함으로 살맛나게 하는 생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이어야 할 그 사랑이란 말에 어떤 의도, 조건, 댓가같은 것이 시시때때로 숨어있어 그 말을 하는 자신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의 사랑엔 언제나 아픔, 배신, 질투 따위의 불행이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산책길의 유클립투스들이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랑을 말하지 말라, 다만 거기 있으라, 그저 자기의 존재를 빛내며 있으라 한다. 한 그루 나무가 되라한다. 그리고 강이, 산이 거기 늘 있듯이 그저 있으라 말한다. 이미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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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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