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소풍을 앞둔 설렘으로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요세미티로 가는 워크샵을 앞두고 그랬다. 새벽부터 선잠에서 깨어나 워크샵에 대한 부푼 기대로 기분이 들떴다. 낮 12시 서둘러 요세미티를 향해 나섰다.
하이웨이 101을 지나 156-E 도로에 들어서니 한가로이 풀 뜯는 소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분주한 몬트레이시와는 정반대로 순박하고 조용한 동네를 보니 경기도 광주 미사리 외갓집이 생각났다. 방학 때면 찾아가 지내던 할머니집이 문득 그리워졌다. 서울 숭인동에서 태어나 이곳에 오기 전까지 우리는 할머니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길가에, 언덕에 핀 노란 유채꽃이 화사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오랫만에 누리는 설렘을 더욱 달구기도 했다. 요세미티로 가는 3시간 운전에서 수많은 풍경들이 오랜 기억을 불러내고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사람들을 불러냈다.
나처럼 모두들 흥분과 기대로 1박 2일 워크샵에 참가한 듯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야외식사로 웃음꽃을 피우며 좀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웅장함에 다시한번 감탄하면서 워크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아름 추억을 얻은 것 같았다.
미국 생활한 지 40년,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젊음의 피가 솟구쳐 뭐든지 다 해 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겁이 많아진 건가, 아니면 실망하기 싫은 자기방어가 두터워진 건인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기쁨도 아픔도 먼훗날엔 추억이 될 것이다. 그 시절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배움의 욕망들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유, 나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 됐다. 그 배움들을 우리 2세들과 타민족들에게 전수하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해온 것이 가장 뿌듯하다.
언제나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나와 맞지 않는 인연들도 좀 더 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 되돌릴수 없는 많은 모순들도 세월이 지나 생각하게 되면 별것 아니었어, 그때 너무 심각했었던 것들도 많다. 류시화씨가 번역해 유명해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온 구절처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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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몬트레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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