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앞에는 레코드 가게가 하나 있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은 행인들에게 음악이 잘 들리도록 처마 밑으로 스피커를 설치해 두었다. 학교를 다녀오는 버스에서 내리면 어김없이 최신 유행 음악이 자동차 소리 속에 섞여 유유낙낙 공기 속을 날아다니고 있다. 영국 팝 듀오 왬이나 케니지의 연주들도 모두 우리 동네 레코드 가게를 통해 알고 좋아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코드 가게 출입문은 주로 공연 포스터나 가수들의 브로마이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전면 유리 너머로는 막 나온 신곡들이나 베스트 셀러 음반들이 바깥을 향해 잘 보이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가게 유리창 앞에서 귀동냥으로 음악을 들으며 음반들을 구경하는 일이 많았다. 그곳은 하교할 때면 의례히 들리던 곳이었지만, 학생에겐 낭만적이면서도 다소 사치스러운 곳처럼 느껴져서 들여다보는 만큼 자주 들어가지는 못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앨범 속 가수들의 모습은 마치 눈앞에 있는 꿈 같았다. 케니지의 긴 곱슬머리나 마돈나의 요란한 옷은 먼 나라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이끌어내곤 했다. 저들은 어떤 곳에서 왔길래 남자가 저렇게 긴 머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어쩜 이토록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내 마음은 가본 적도 없는 곳을 향해 자꾸만 날아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구경만 하던 발걸음에 용기를 실어 레코드 가게 안으로 들어갈 때가 있었다. 흠뻑 반한 노래나 오래 간직하고픈 노래가 생기면 그제서야 레코드 가게 손님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음악이 흐르고 사방으로 빼곡히 진열된 음반들 속에 있으면 나 또한 음악으로 가득차 오르는 듯했다. 게다가 갖고 싶던 앨범을 사기라도 하는 날에는 입가에 시냇물 같은 미소가 흐르고 빠른 물살처럼 집으로 달리게 된다.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헤드폰을 뒤집어쓴다. 그러면 영화가 시작되듯, 혹은 비행기에 올라탄 듯, 음악에 실려 먼 곳으로 떠났다.
친한 친구와 싸워 속상했던 날, 공부가 지겨웠던 날, 혹은 세상이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날이나 괜시리 설레던 날에도 음악으로 여행을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 가장 흥분되고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그 상상 속의 여행 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음악들을 통해 내게 넘어왔던 그 많은 동경심들이 나를 이 먼 곳까지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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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선(교육학박사 A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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