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마지막날을 인천 월미도에서 보냈다. 대한제국 때에는 일본 해군 기지와 러시아 석탄창고 등이 잇따라 이곳에 들어서면서 열강들의 치열한 다툼터였던 월미도는 수난의 섬이었지만 1987년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래 문화예술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탈바꿈됐다. 또 월미도 놀이동산과 바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인해 관광명소가 됐다. 주말이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긴 바다를 끼고 잘 다듬어진 자그마한 꽃동산도, ‘청년의 정열으로 서해의 시대를 열겠다’는 푯말도 이곳 젊은세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잘 만들어진 무대 위에는 3월의 찬 바닷바람도 잊고 열심 공연하는 팀들이 흥을 돋우고, 관광지 어디서나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가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잘 맛볼 수 없는 번데기를 먹으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도로로 나오니 세계 어느 나라든 자리잡고 있는 차이나타운이 보였다.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는 중국인들의 끈질긴 정착력이 새삼 감탄스럽다. 먼 바다를 바라보는 맥아더장군의 동상도 이곳 인천공원의 자랑이다. 인천상륙작전이 아니었다면 서울 탈환은 어려웠을 것이며 전세를 뒤집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천에 오면 맥아더장군 동상은 꼭 보고가야 한다. 당시 이념논쟁은 68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가르는 개념이 되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성장과 발전만을 생각하면서 남과 북의 화해와 화합만을 기원해본다.
공항으로 가는길, 첨단기술의 집합체로 수많은 기록과 화제를 낳은 인천대교 위세에 감탄했다. 거대하게 서 있는 주 탑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파리 에펠탑, 뉴욕의 자유여신상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인천대교는 그 규모가 세계 7위의 교량으로 6차선 도로를 자랑하고 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웅장함이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국내 최초로 최강의 다리가 되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자랑할 것도 많은 내 모국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아리다.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하고 그리운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뒤로 하며 돌아서는 일은 아직도 익숙치 않은 일이다. 제 2의 고향인 미국으로 떠나는 길은 항상 아쉬움에 눈물이 흐른다. 나만 두고 멀어지는 그들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눈물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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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몬트레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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