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해 난 얌체족이다. 오늘만은 적어도 그랬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한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가지 않았던 성당을 필사적으로 가야 했다. 마음 가득한 고민과 나름 힘든 숙제가 훌훌 풀릴 것만 같아서다. 꼬옥 다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은 내가 얼마나 뻔뻔스럽고 얄미울 정도로 얌체인가 싶다.
비에 젖은 3월도 가고 한껏 화사한 4월이 왔다. 버티칼 사이로 빛 고운 햇살이 아침을 나른다. 싱글러운 풀내음이 싱싱한 4월도 나르고 어디서 날아 왔는지 새 한쌍이 이른 아침 데이트를 하며 내게 예쁜 희망을 나른다. 기지개 편 마음이 한껏 밝아진다. 아! 부활절 아침이다.
지난해 이맘 때 우리는 새로 시작한 일이 참 많았다.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가게며 오래 되어 바꿔야 했던 기계들, 그리고 새 이웃들과 새 손님들, 많은 것이 새로웠다. 그런 만큼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손님은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새 가게까지 기꺼이 와주었다.
그날은 부활절을 몇 일 앞두고 일도 바빴거니와 오래된 보일러 말썽으로 노심초사한 아침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얼마나 지나지 않아 이른 아침 첫 손님이 왔다. 반갑게도 옛가게 오래된 단골손님이였다. 늘 남편 바지를 비닐봉투에 담아오면서 어찌나 미안해하는지… 그도 그럴 것이 바지엔 소변은 물론 가끔씩 대변도 묻어왔다. 그날도 역시 옷이 들어있는 비닐봉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봉투를 건네받으며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의 남편은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 대소변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정신까지 온전치 않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Happy Easter!” 다정한 인사와 함께 카드를 내게 건네고는 바쁘게 그녀는 떠났다.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비닐봉투에 든 바지는 주로 내가 먼저 부분 물빨래를 한 다음 드라이크리링을 한다. 바지엔 역시 많은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꺼내보니 300달러-그것도 빳빳한 100달러짜리 3장.
몇 일 뒤 그녀가 옷을 찾으러 왔다. 봉투에 그대로 넣어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완강히 거부하며 절대 자기네 돈이 아니란다. 결국 찾아가지 않았다. 가끔 돈을 더 내려고 해도 받지 않아서였을까? 부활절 수수께기가 되었다.
얌체 2018 부활절이 웬말인가, 베풀고 사랑많던 2017부활절이여 부활하라. 비 개인 뒤 햇살이 더 빛나듯이.
<
김미라(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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