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란 공동의 관심사와 목표, 이해를 가지고 구성된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공동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불협화음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니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인의 공동체에서는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정’으로 인해 모임의 화합을 저해(沮害)하기도 한다. '정'으로 포장된 허물없는 사이는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촉매가 되기도 하며 지나친 상호 간의 관심은 종종 상대와 나 사이에 ‘프라이버시'의 벽이 허물어지게 된다.
서양인에게는 그러한 ‘정'이라는 것은 없고 비슷한 '프렌드십'이 있을 뿐이다. 가령 친구와 어떤 주제를 놓고 논쟁을 하였다 치자.
서양인은 그렇다고 그다음 날에 뭔가 달라진 느낌이 없는 편안한 대화를 이어간다. 반대로 한국인 사이에는 서먹함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서양인은 머리로 받아들이고 한국인은 정과 함께한 가슴으로 받아들여서이다.
정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끈끈하고 훈훈함으로 상호 간에 좋은 관계로 지내게 됨을 말한다. 그런데 온전히 사용되지 않은 '정' 일 때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가 있다. 실수하게 되는 경우를 들자면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여 포장된 친절함이다. 남이라고 생각하면 안 할 말도 친한 사이라고 스스럼없이 말을 하는 것은 언어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에서는 같은 목표와 관심사로 인해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며, 회원 사이에는 조금 더 희생하는 편이 있게 되고 조금 더 양보하는 편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과 의리로 포장된 이기적인 행동은 그런 계산은 접어 두자고 할 것이며, 그러한 사적인 친분으로 인해 공동체 화합의 틀이 깨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많은 관심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B는 늘 고맙게 생각하던 차에 A로부터 뜻하지 않은 도움을 요청받았다. B는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환대를 생각하며 흔쾌히 들어 주었다. 그러나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 믿음과 ‘정’에 의지할 경우에는 상호 간의 채무(債務)를 지는 기분만 들게 된다.
그러한 소통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더 소원하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공동체에 몸담은 멤버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고국은 물론 교민사회에서도 상호 간에 한국인의 '정'을 우선하는 마음은 기본으로 하되 서양인의 머리로 이해하는 '프렌드십'과 조화를 이룰 때 더 겸손하고 화목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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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무심/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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