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여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비즈니스 자격증 코스를 등록했다. 그 코스는 방학 내내 아침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비즈니스 핵심 과목 세 가지를 배우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해당 과정은 페레즈 교수와 중년의 백인 싱글인 커티스 교수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커티스 교수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는 기본 시험 외에도 주 삼 회씩 퀴즈를 내가며 학생들의 실력을 재단했고 온라인으로 매일 성적을 확인토록 했다. 덕분에 그 여름은 무척 고됐다. 그렇게 학생들이 지쳐갈 무렵, 페레즈 교수께서 커티스 교수와 학생들을 댁으로 초대했다.
더운 여름 저녁이었다. 음식은 간단했고 음악은 풍성했다. 나무 바닥의 거실에는 까만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이자 파티오로 연결된 프렌치 도어를 열어 두었다. 덕분에 저녁 바람도 함께 있었다. 잔디 밭의 푸른 냄새가 실려왔다. 오고 가는 이야기가 노을 속으로 여울져 갔다. 달빛이 선명해질 즈음엔 그간의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지는 듯 마음이 몽실몽실해졌다.
커티스 교수도 그랬던 것 같다. 라틴댄스를 춘다고 고백한 걸 보면 분명하다. 그는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거실 가운데로 나가 포즈를 취했다. 빳빳이 다린 옷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라틴댄스는 원래 파트너가 있는 춤인데 혼자인 것이 어색했는지 한 여학생이 선뜻 파트너를 자청했다. 알고보니 그녀도 라틴댄스 동호회 소속이라 했다. 그들은 마치 어항에서 강으로 풀려난 물고기처럼 매끄럽고 쾌활하게 움직였다. 커티스 교수의 능숙한 라틴댄스는 신선할 뿐만 아니라 충격적이었다. 대학에서 스트레스 많은 일을 하면서도 잘 버틸 수 있는 무기가 있었구나! 그의 춤을 보면서 삶의 성취와 삶을 즐기는 기쁨,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웠다.
그리고 시끄러운 세상 뉴스가 많이 들리던 어느 날 문득 그의 춤이 떠올랐다. 인생의 무게를 덜어주는 유쾌한 휴식이나 즐거움 없이 삶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도 그처럼 자신만의 라틴댄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물 속으로 물고기를 풀어주듯 스스로를 안전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내일은 한 치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래야 자기 자신과 평생 일궈 온 열매들을 지키며 인생을 온전하게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연선(교육학박사 A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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