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은 뭉근히 데워진 온돌 같아진다. 편지 위를 지나간 손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 듯하고, 글씨체를 보면 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웃음도 난다. 예쁘장하게 인쇄된 폰트 속에 숨지 않고 솔직한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내어 준 것 같아 사랑받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서부터 아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살게 되면서부터는 잊고 있던 손편지를 다시 쓰게 되었다. 곁에 살면 전화 한 번 하거나 잠시 들러 얼굴 한 번 보면 될 일인데 낮과 밤이 거꾸로 가는 곳에 사니 그 쉽던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고, 중요한 날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더 솔직히는 따뜻한 속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전화로는 차마 살가운 소리가 잘 안나오기도 하려니와 새삼 쑥스러워 펜을 드는 것도 있다.
그런 개인적 취향인지 믿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빈 종이 앞에 앉으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좋은 감정들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는다. 편지에 담을 생각과 단어들을 진중하게 고르다 보면 고마운 줄 모르고 냉큼 받았던 호의나 그때는 잘 몰랐던 사려깊은 정들이 그림의 한 폭처럼 떠오른다. 그 그림은 먼 시간을 걸어와 되돌아보아야만 보이는 듯하다. 애틋하고 고마운 순간들, 말없이 오고 간 마음들, 나도 모르게 감동받은 순간들처럼 마음이 기억하는 모습들이다. 이를테면, 부탁받은 책을 한아름 껴안고 나타난 친구의 미소, 생각이 나서 사왔다며 빵이 가득 담긴 봉지를 불쑥 내밀던 손, 잔치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데 가만히 보태어진 손길들, 어린 딸을 데리고 먼 길 배웅나온 동생네 발걸음, 이민 가방에 직접 담근 김치를 포장해 넣고 계시는 부모님의 뒷모습...그렇게 휘리릭 지나가 버렸던 순간들이 편지 앞에서는 선명한 그림이 된다.
그러나 정성껏 고른 단어들이라 해도 마음을 제대로 싣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어떤 때에는 더 예쁘게 꾸미거나 적당한 말을 찾느라 붙들고 있다가 보낼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과연 번거롭고 진부한 방법인 듯하여 한동안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못해도 중요한 날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손글씨를 담고 싶어진다. 편지지와 펜을 고르고, 전할 말을 고심하고,예쁘게 쓰려고 애쓰고 집중하는 그 모든 작은 행위가 모여 그리움으로 타버린 마음에 환하고 뜨거운 사랑을 다시 일게 하기 때문이다.
<한연선(교육학박사 A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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