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우연한 기회에 봤던 한국무용 공연이 내 인생을 바꾼 것 같다. 그날 가락에 맞춰 날개를 펴며 추는 학춤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는 감히 내가 한국무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까만 갓을 쓰고 난초 그림의 부채를 들고 흰 도포자락를 날리며 추는 학춤은 부드러움과 절도있는 남성의 자태를 보여주었다. 둥근 모양의 원을 그리며 8명이 추는 군무는 내게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모듬뛰기, 옆걸음, 외발서기와 한번씩 무릎이 땅에 닿을 듯한 자유분방한 춤사위는 매력적이었다.
그날 강렬한 학춤의 기억탓일까, 그후 나는 한국무용을 배웠고 지금까지 공연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하루에 4-5시간 오가는 지루함도 잊은 채 오랜시간 춤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한 동작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컸고, 군무를 통해 협업과 배려의 중요성을 배웠으며,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애착도 갖게 되었다. 종교적 색채가 있는 전통무용에 선입견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주류사회에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통로이자 세계인과 소통, 교감하는 채널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화원 학생들과 마리나시 퍼레이드에 참가해 풍물놀이와 설장구 공연을 펼쳤다. 여러 타악기들이 모여 하나의 색깔로 만드는 가락은 모든 이들의 흥을 돋우며 어깨 춤을 들썩이게 했다. 몇 십 년만에 찾아온 혹독한 더위도 잊게 만든 우리 고유의 가락들은 이날 더욱 빛이 났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문화원 학생들은 매주 모여 한국 전통 악기인 북, 장구, 소고춤의 가락을 배운다. 그중 제일 작은 악기인 소고는 아이들에게 인기다. 한 손에 쥐고 세워서 돌리면서 엎고 젖치면서 울리는 가락은 흥겨움을 준다. 온몸을 뛰면서 하는 여러 동작들은 아이들에게 꼭 맞는 춤이다. 하늘을 울리는 청아하고 우레같은 북소리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북춤은 7개의 북으로 시작해 오고무, 삼고무, 난타와 같이 하나로 만드는 외북도 독무와 군무로 작품이 완성된다.
무용인들이 작품을 펼쳐내는 공연에는 그들의 높은 자부심이 엿보인다. 전통을 잇는 장인의 품격과 예인의 향기가 전해온다. 각 나라간의 만남은 문화로 시작된다. 문화를 통해 서로의 벽이 허물어진다. 한국전통예술이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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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몬트레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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