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지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동부에서 유학을 일단락하고 서부로 올 때 우리는 자동차로 대륙 횡단을 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시작한 여정은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유명한 곳만 들르고 있었지만 이동 길은 만만치 않았다. 시카고에서 마운트 러쉬모어로 가는 지루한 길을 몇 시간이나 달렸을까? 달도 덮어버린 검은 하늘은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내렸고, 광활한 벌판과 하늘 사이에는 우리뿐인 듯했다. 덕분에 우리는 계획을 수정하여 낯선 동네에서 밤늦게 하루를 마감했다. 열심히 달려 왔지만 그만 멈춰야 할 때, 원하는 곳까지 아직 못갔음에도 멈춰야 할 때, 그날은 꼭 그런 밤이었다.
그렇게 예정보다 하루 늦게 러쉬모어를 구경하고 옐로우스톤으로 갔다. 산 높은 바위에 조각된 대통령 상이 인간의 집념에 감탄토록 했다면 옐로우스톤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하얀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물 위로 긴 나무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진 않다. 나도 다리가 멈춘 곳에 서서 낯설고 뜨거운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색깔과 온도를 뿜어내는 모습을 두고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겨우 떠났다. 그리고 아이다호를 거쳐 유타로 달렸다. 그저 푸른 대지와 얼굴을 씻어주는 바람뿐이었다. 내가 바람인 듯했고 푸른 들판인 듯했다. 들판의 나무처럼 존재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고 가벼운 시간이었다.
그리곤 힘껏 달려도 멈춰 있는 것만 같은 시간을 얼마간 달리자 라스베가스가 나타났다.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라치면 현란한 조명들이 눈을 가리고, 바람 소리는 사람과 차 소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푹 쉬고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다시금 힘을 얻었다.
그 덕인지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기도 덕인지 우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낸 새 실 같은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행을 닮은 일상도 다시 시작되었다. 각기 달랐던 여행지처럼 날마다 다른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새로운 안식처를 좋아했다. 내 집에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가득하다면 집으로 가는 길이 늘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열매도 많아지는 듯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이 행복한 하루, 그것이 내가 살고 싶은 오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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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선(교육학 박사 A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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