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온 지 몇 해 지나 아직도 타향살이가 서툴던 시절 여성의 창을 썼었다. 아이들도 어렸고 살기도 녹록치 않았던 때였지만 돌이켜보니 참으로 행복했던 때였다. 밤이면 아이들과 단란한 저녁시간을 함께하며 난 글을 썼었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글로 사람들을 만나니 좋았다. 잘할 수 있다 격려해주는 분들도 만났고,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고등학교 동창도 만나게 되었다. 학창시절 즐기던 글 쓰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훌쩍 십 수년이 흘렀다. 나아진 것도 없이 타향살이는 어느덧 스무 해를 바라보고 품 안에 있던 곱디고운 아이들은 출가를 하여 부모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이젠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반백이요 가르치던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되었다.
지난 세월동안 수많은 만남을 나눴으니 헛된 것만은 아닌 듯싶다. 섬기던 교회를 통해, 가르쳤던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 또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예기치 않았던 만남 속에서 기쁨을 누렸고 사랑을 줄 수 있었으며 사랑을 받기도 했다.
때로 어떤 만남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그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게 하는 잊지못할 감동을 주는 그런 만남도 있다. 우리 손녀가 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며 내게 인사하던 그 만남은 환희요 기쁨이요 감격 그 자체였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낳았을 때와는 또다른 감동이었다. 옛 어른들의 말씀을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감격스런 만남은 수개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아이를 만날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고 춤추게 한다. 아마 이 땅의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마음을 이해하실 것이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 속에 희망과 설렘을 경험한다면 지금 나는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가슴이 설렌다. 글을 통해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웠던 분들을 만나고, 또 함께 공감하고 경험하게 될 새로운 만남을 말이다. 삶의 또다른 한 페이지를 만들어가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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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씨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1998년 도미 후 상항기독합창단 반주자를 역임했고, 현재 상항중앙장로교회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롸이더스그룹 주최 육아수기 공모전에서 2006년 금상, 2016년 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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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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