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걷다가 참 낭랑한 새소리를 들었다. 어느 작곡가도 그리 경쾌한 가락을 낼 수 없겠다 싶게 밝고 아름다웠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둘러봤더니 어른 주먹만한 새가 나무 기둥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가던 걸음 멈추고 그 녀석 소리를 감상했다. 어떻게 말로 표현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듣고 또 듣고 있어도 내 능력으로는 그 소리를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토록 절묘한 새소리들을 우리 선조들은 잘 표현하기도 했다. 봄에 밤을 새워 울어대던 소쩍새 우는 소리를 “접동 접동”으로 들어 접동새라 하는 이야기도 있고, “죽어 죽어”로 표현한 이도 있다.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굶어 죽은 며느리가 새로 환생하여 “솥 적어 솥 적어” 울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솥이 적어 밥 못 먹고 죽은 자신을 한탄하며 울었다는, 고부간의 갈등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서울서만 살다가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내려가 약 4년간을 산 적이 있다. 아이들은 산 중턱에 있는 집에서 해안가 가까운 학교까지 통학을 했다. 마을회관 앞에 오는 학교 버스를 타려면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사춘기 시작할 무렵의 딸아이는 이 통학 방법을 아주, 매우 싫어했다. 한마디로 서울 소녀의 스타일을 구기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얼굴로 언덕길을 내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비탈진 길을 투덜투덜 내려가며 딸아이는 속으로 ‘가기 싫어, 가기 싫어’를 뇌까리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까마귀 떼가 따라오며 소리 지르더란다. “가아! 가아!” 제주도의 까마귀는 등굣길도 재촉해준다는 이야기.
얼마 전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중 도보다리 위 단독회담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세계가 이목을 집중했던 그 장면의 배경을 새소리들이 한몫 거들었다. 언론은 그 새소리를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소리로 해석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몸통도 작고 여린 새 한 마리의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한을 풀어주는 소리로, 어느 주요 행사에서는 환영 말씀으로, 사춘기 여자 아이에게는 얼른 학교 가라는 호통으로도 들릴 수 있다니 재미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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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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