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실린 글처럼 다문화 가정인 우리 집은 6명의 아이들이 복닥복닥 살다가 1번, 2번이 얼마 전 집 근처로 독립해 나가고, 4번은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4번 말인즉, 나이 든 아버지 잔디 깎는 거 힘들어서 도와줘야 한다는 반지르르한 감동의 말과 함께 말뚝을 박을 기세다. 여기서 1번, 2번은 남편의 두 아들이고, 3번, 4번은 내 딸과 아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나이순대로 번호를 매기고 남편 쪽, 내 쪽을 가리는 것이지 어느덧 우리 가족은 서로 둥글둥글 섞여 있다.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리고, 엄마/아빠 호칭도 자연스럽게 하고, 무엇보다 나간 아이들도 가깝게 살다보니 자주 어울려 밥 먹고, 맥주 마시고 수다를 떨다 간다. 어느 날은 모두 둘러앉아 만두 빚어 먹으며 수다 떨고, 어느 날은 그윽한 불 켜놓고 마이크 가라오케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우리가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된 것을 느낀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과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시간이 우리에겐 회복의 시간들이었다.
재혼할 때, 내가 바라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회복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 재정립이었다. 가정이 깨지면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새로운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을 올바르게 재정립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개성 강한 3번, 4번이 새아빠와 투닥투닥 부딪히는 일도 많았지만, 요즘에는 서로의 다름도 알고, 무엇보다 남편의 수고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입장이 되었다.
1번, 2번은 영어권이라 속 깊은 얘기를 다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통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남편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착각도 한다. 순종적인 1번, 2번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크면서 은근히 쌓인 불만이 있었나본데, 그런 불만도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시간에 서로 털어놓게 되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감동적인 순간도 그런 시간 중에서였다. 그때의 아이들 표정은 뭔가 드디어 위로 받은 느낌인데, 아빠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고, 고맙기도 한 복합적인 느낌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 이후,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한 부자지간이 된 것 같다.
이 다문화 가정이 삐거덕삐거덕 거리지 않고 잘 굴러가서 각자 또 더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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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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