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 25개 식당에 6곳이나 이름 올려, 텍사스풍 가미한 퓨전메뉴도 속속 등장
▶ 백인셰프 타이슨 콜이 추세 선도

텍사스 어스틴의 일식업계를 대표하는 셰프인 타이슨 콜(왼쪽)과 유명 바비큐하우스를 운영하는 셰프 애런 프랭클린. 두 사람은‘로로’라는 아시안텍사스 퓨전식당을 함께 오픈했다.
<어스틴, 텍사스> 타이슨 콜은 1990년대 초 오리지널 일본판 ‘아이언 셰프’에 말 그대로 꽂혔다. 그의 제2의 고향인 이곳에서 일본식당의 접시닦이와 종업원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난 후였다. 올 47세인 콜은 “내 인생에서 그런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보다 더 흥미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콜은 현재 이 도시의 대표적인 셰프 가운데 한사람이 됐다.
그가 20대 초 정착했던 태양이 내리쬐는 어스틴은 텍스-멕스, 그리고 바비큐와 동의어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에서는 일본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어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맨의 식당평론가인 매튜 오덤은 어스틴 최고 25개 식당 리스트에 6개의 일본식당을 올렸다. 육지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일본계 인구는 0.2%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텍사스 이자카야’라고 칭하는 케무리 탓수야는 GQ와 이터 등의 잡지에 의해 미국 내 최고 신생식당들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이런 현상의 한가운데 콜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콜이 스승인 카메히코 후세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 태어난 후세는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셰프이다. 콜이 주택을 개조해 지난 2003년 오픈한 우치와 그가 뒤이어 문을 연, 우치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우치코는 어스틴의 요식 정체성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어스틴 중심가의 일식당인 쿄텐 시코의 셰프이자 소유주인 오토 판은 “우치는 어스틴이 일본과 관련된 것들과 사랑에 빠지는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음식평론가인 패트리셔 샤프는 콜은 어스틴의 집단적 입맛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샤프는 “만약 콜이 포트워스로 갔었다면 그곳이 그랬을 것”이라며 어스틴의 일본음식 인기를 1970년대 멕시칸 음식의 인기와 비교했다.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어스틴의 일본식당들을 순례하면서 콜과 함께 일하거나 그의 밑에서 일하지 않은 셰프를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코메와 후쿠모토 스시 & 야키토리 이자카야 같은 식당들에서는 니기리와 사시미, 스시롤 같은 익숙한 메뉴들을 즐길 수 있다. 쿄텐 스시코와 사우스콩그레스 호텔 내 오토코 같은 식당들은 정교하고 비싼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는 작은 곳들이다.
그리고 지금 몇 몇 식당들은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일본 요리를 전통적 텍사스 요리와 융합하는 것이다. 지난해 동업으로 케무리 탓수야를 오픈한 탓수 아이카와와 타쿠야 마쓰모토는 이런 하이브리드 음식의 선두주자들이다. 타코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쓰모토는 이 식당의 텍사스 스모크하우스(훈제실)와 일본 바 푸드의 결합을 “일본계 텍사스 사람인 우리를 잘 대표한다. 텍스-멕스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콜도 지난 4월 같은 임무에 뛰어들었다. 그가 아시안 스모크하우스라 부르는 식당 로로를 오픈한 것이다. 콜의 동업자는 유명 식당인 프랭클린 바비큐의 셰프이자 주인인 애런 프랭클린이다. 어스틴과 휴스턴, 그리고 달라스에 있는 콜의 식당들이 느슨하긴 해도 일본 스시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것과 달리 로로의 메뉴들은 훈제 고기들에 아시안풍 소스와 사이드를 곁들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식당 내부는 텍사스 댄스홀을 본 따 만들어졌다.
콜은 로로에 대한 영감이 일본의 대표 음식들과 텍사스 것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주문에 맞춰 고기를 썰어 바로 손님들에게 내놓은 것은 스시와 닮아있다”고 덧붙였다. 동업자인 프랭클린은 “텍사스 바비큐는 스시의 오래 익힌 붉은 고기 버전이라는 콜의 이론을 테스트해 볼 생각”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콜은 텍사스를 떠나지 않고도 얻은 스시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어스틴의 일본식당들에서 차근차근 올라갔다. 그러나 일본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어려움도 많았다. 그가 첫 식당에서 주인에게 스시를 썰고 싶다고 했을 때 “넌 백인이라 스시를 만들 수 없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타협점을 찾아 콜은 손님들이 볼 수 없는 주방 뒤쪽에서 스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서야 그는 손님들 앞에서 스시 만드는 게 허락됐다. “그러나 그것도 점시시간 때뿐이었다. 하지만 내 팁 병은 매일 가득 찼다”고 콜은 회상했다.
콜은 같이 일하면서 자신들의 기슬을 전수해준 일본인 셰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자신이 7년 이상 일했던 마사시로 스시 도코로의 주인이자 셰프인 후세에게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후세는 콜에게 일본어를 배울 것을 주문했다. 요리 훈련의 일환으로 일본어를 쓰고 읽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콜은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세는 어스틴의 셰프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많은 유명 셰프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후세는 나서길 대단히 꺼린다. 수차례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어스틴에서 일본 음식으로 유명해진 비일본계 셰프에 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쿄텐 스시코의 주인이자 셰프인 판은 베트남계로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대만에서 태어나 어릴 적 어스틴으로 이주한 스테이시 첸은 대만 외할머니가 오사카에서 운영했던 라면집을 본 따 새 식당 요시 라멘을 오픈했다.
올 31세인 아만다 터너는 달라스에서 자랐다. “일본 만화영화를 보며 자랐다”는 그녀는 조리학교 재학 시절 우치 식당에 일자리를 얻었을 대 “잭팟을 터뜨린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현재 그녀는 이탈리안 식당인 주피터의 주방장이다. 그러나 그녀는 금년 여름 도쿄의 유명한식당인 니혼료리 류긴에서 3개월 동안 도제실습을 받을 예정이다. 어스틴으로 돌아오면 일본식당을 오픈하고픈 것이 그녀의 꿈이다.. 터너는 “백인 남성들이 다른 문화의 음식에 뛰어드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나는 흑인여성이다, 나는 그것을 바꾸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