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창들과 등산 가기로 한 약속을 시샘이나 하듯 밤새 비가 내렸다. 소풍 전 날 아이처럼 셀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창문 너머 내리는 비를 감상하면서 망설이다가 친구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바쁘게 갔다. 아슬하게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먼길 달려온 손님이라고 반겨주는 친구들 덕분에 비에 젖은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동차는 올림픽대로를 달려 경기도 남양시 수종사로 향했다. 마을 아래서 수종사를 바라보니 모든 기운이 한 곳에 모아지듯 산의 묘미가 느껴졌다. 그동안 못나눈 이야기 꽃을 피우며 산사로 가는 길에 초록 물결이 비를 맞아 싱그러움을 더했고 이방인을 기다리는 듯 굽이굽이 펼쳐지는 운길산은 안개 낀 두물머리의 넓은 시야가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발 아래 가득 펼쳐졌다.
잠시 얼굴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닦으니 우람한 나무 사이로 수종사가 한눈에 들어왔다.친구들과 대자연의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산천 초목의 생동감을 느끼니 좋았다.
구름이 지나가다 산에 걸려 멈춘다는 운길산 수종사는 다른 절에서 볼 수 있는 일주문은 보이지 않지만 길손을 반기는 자태는 인상적이고 소박함이 묻어났다. 돌담과 돌계단을 올라보니 생각보다 작은 사찰이지만 그 내력은 대단했다.
조선시대 세조가 금강산에서 요양하고 돌아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머물게 되었는데 한밤중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탐사해 보니 바위굴 속에 16나한이 모셔져 있어 길조로 여겨 사찰을 짓게 되었단다.
대웅보전 주변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부도에 청자 항아리, 금동구층석탑, 은제도금육각감, 팔각오층탑과 세조가 심었다는 500년이 넘는 둘레 7m 되는 은행나무 등…. 단청의 빛이 바래고 문고리가 녹슬어 볼품없어 보이지만 꽃을 수놓은 듯 정교하고 단아한 대웅보전의 문살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눈 아래 펼쳐지는 자연 경관에 나도 모르게 매료되다 보니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운길산에 올라 “동방의 사찰 중 최고의 전망”이라고 극찬했던 것에 공감이 됐다.
또한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삼정헌에서 통유리창 너머로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차의 향기를 음미하니 시름을 벗어 두고 쉬어가라는 나옹화상 선시가 바람에 실려 들리는 듯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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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SV상공회의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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