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버지께서 깨우면 나는 부스스 일어나 배드민턴 채를 들고 나왔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아침 운동 삼아 나와 배드민턴을 치셨다. 내가 이기면 부라보콘을 사 주기로 약속하셨고 아이스크림에 죽을 둥 살 둥 하며 배드민턴을 쳤다. 물론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그 한두 번도 나의 죽기 살기 필살기로 달려드는 모습에 져주신 게 아닐까?
엄마가 말씀하시길 나는 아버지와 닮아도 너무 닮았단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격, 식성 등 아주 빼닮았다고 하셨다. 아들 바라기인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늘 내 편이셨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초등학생 때 미국방송인 AFKN을 보며 내용을 설명하면 어떻게 그런 걸 다 이해했냐고 놀라워하셨다. 그건 내가 영어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한참 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아버지는 별 것 아닌 것도 남들에게 내 자랑을 하셨다. 이런 칭찬이 수줍음 많았으나 내적으로는 자신감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해주신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가끔 엄마는 아버지께 서운한 일이 있으면 전화해 나의 역성을 기대하셨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면 아버지의 잘못은 모르겠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 못 하는 엄마가 오히려 이해가 안 돼 아버지의 입장을 설명할라치면, 엄마는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어쩌면 제 아버지 편만 드냐”면서 서운함을 표현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민 온 지 얼마 안 돼 동생들과 갈등이 있었는데 속상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중립이셨고 오히려 동생들 편을 드는 듯하셔서 한동안 서운했다. 그후 한참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엄마의 산소 앞에서 “나도 너희 엄마 가고나서 , 한동안 정신없이 산 것 같다. 내 정신이 아니였어”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지만, 그 말씀으로 그동안 서운했던 모든 내 감정을 다 날려 보냈다. 나도 엄마를 잃었지만, 아버지는 평생 반려자인 아내를 떠나보내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가 ‘나’이도록 지지해주신 분, 늘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쳐 주신 분, 그런 아버지가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서 감사하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제 곧 Father’s Day가 온다. 나처럼 사랑 표현에 인색한 분들이 있다면, 이달이 가기 전에 용기내 부모님께 사랑 고백을 해보심이 어떨는지…
<
강희선(SF공감 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