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 남편이 나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준 것이 운전이었다. 미국에서 살려면 꼭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남편이 먼저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국에서 ‘기사 두고 살면 되지’라는 야무진 꿈으로 면허증을 따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집 기사다.
내가 처음으로 살았던 시라큐스에서 처음으로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게 되었다. 다행히 성격이 느긋하고 칭찬을 잘 하는 남편 덕에 한번의 싸움도 없이 면허증을 따게 되었다.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산한 동네라 차선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동네가 작으니 길을 잘못 들어 돌아와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고, 내가 운전을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주위 운전자들이 나를 배려하고 도와주었다. 미국에서 운전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복잡한 산호세로 이사 오니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교통 체증도 심하고, 사고도 많았다. 이제 운전이 재미있지만은 않게 되었다. 슬슬 운전을 하면서 다른 운전자에게 대한 평가가 늘어나고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하며 거칠게 운전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득 어느 순간 예전에 내가 초보 운전자였을 때 나를 배려했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훗날 나도 나이를 먹어 저렇게 헤매고 있을 내 모습이 보였다. 즉 상대 운전자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배려하고 양보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한결 운전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상대방의 운전에 대해 이런저런 훈수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운전으로 인한 다툼은 없었다. 그런데 무사고 운전 경력 15년차가 되면서 슬슬 남편의 운전에 훈수가 두고 싶어진다. 길치인 우리 남편이 길을 헤매거나 나가는 길을 놓치거나 할 때(솔직히 이런 일이 매우 자주 있다), 예전에는 그래 좀 시간이 더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졌는데 요즘은 좀 짜증이 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내가 운전할 때 옆에서 남편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기에 입을 꾹 닫는다. 올 여름 방학 가족 여행은 자동차로 먼 길을 떠난다. 분명 우리 남편은 또 길을 헤맬 것이고 나가는 길을 놓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입이 근질거려도 “뭐 쫌 늦게 가면 되지 뭐”라고 나의 마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하리라.
<김주성(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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