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명적 약점은 숫자와 친하지 않다는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살았건만 집주소도 아직 헷갈릴 정도고, 사무실 팩스 번호도 아직 외우지 못한다. 당연히 장을 봐도 뭐가 얼마였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가계부를 쓰면 좀 나아지려나해서 몇 년을 써봤지만 도루묵이었다. 두 자리 수 넘어가면서 덧셈을 할라치면 남들 모르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해야 할 지경이다.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생각해 낸 것이 스도쿠였다.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겹치지 않게 가로 9칸, 세로 9칸을 채우는 퍼즐인데, 처음에는 이틀이 걸릴 때도 있었다. 점점 요령이 생겨서 요즘은 10분 안에 해결한 적도 있다. 이럴 때는 혼자 우쭐해져서 누가 좀 보라고 펼쳐놓고 있기도 한다.
어려운 문제를 풀 때의 요령 중 하나는 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칸에 예상 숫자를 대입해 보는 건데, 여기에 함정이 있고 매력이 있다. 언뜻 봤을 때는 두 세 개 빈 칸이 가능성이 큰 것 같은데, 의외로 5 ~ 6개 빈 칸이 답을 찾기가 쉬울 때가 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끙끙거리다, 설마 이 칸은 아니겠지 하고 숫자를 넣어보면, 너 나를 무시했지, 봐라 봐 하면서 마구 답을 던져주는 경우를 만나는 것이다.
이 해법 방식이 나의 딱딱해진 뇌를 흔들며 깨달음을 줬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 갈림길에 섰을 때 큰길이 더 좋아 보이고 또한 편해 보이며, 지름길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더 많았었고, 사람을 봐도 내 선입견으로 좋아 보이는 사람을 더 챙겼음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 못난 판단으로 가능성 많은 좁은 길 놔두고 큰길로 가서 낭패를 본 것은 내 손해니 그렇다 쳐도, 아이들 키우면서 좀 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었는데 애초에 차단시키고 큰길로 가라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더군다나 젊을 적 학생들 가르칠 때로 생각이 흘러가면, 가능성 많아 보이는 아이들만 격려를 해줬던 것은 아닌지, 내 섣부른 판단에 상처 받은 아이는 없었는지 식은땀 정도가 아니라 뜨거운 물이 솟을 정도다. 깨달음 뒤에 밀려오는 미안함을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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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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