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매해 가을이 되면 외할머니는 김장을 하셨는데 내 기억으로는 100포기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식구는 6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1년에 한번 있는 김장을 위해서 할머니는 1년을 준비하신다. 늦봄쯤 멸치 젓갈을 담그시고, 여름에 그 젓갈을 다리고, 마늘을 사두고, 가을이 되면 고추를 사서 말려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준비해 놓으신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김치를 담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먹기는 쉽다.
아무런 어려움없이 김치를 먹던 나는 결혼 후 미국에 살게 되면서 김치를 먹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할머니 덕분에 입맛이 고급인 나는 사 먹는 김치에 금방 질렸다. 아, 방법은 단 하나 내가 직접 김치는 담글 수밖에 없었다. 쉬운 깍두기를 시작으로 총각김치, 열무김치, 막김치, 동치미, 오이소박이, 포기김치 등 먹고 싶은 김치를 하나씩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글로 나열하니 엄청난 일처럼 보이지만 맛은 보장할 수 없었다. 특히 포기김치 절이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어쩔 때는 하루종일 절였는데도 배추가 절여지지 않아서 그냥 김치를 담궜더니 배추가 살아있어 김치 샐러드가 되었고, 소금을 팍팍 넣어 절였다가 짜서 물에 여러번 씻기도 하고 정말 배추와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김치와 씨름을 한 것이 10여년이 넘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데 나의 김치 담그는 실력은 영 늘지 않는다. 매번 담글 때마다 새로운 맛이 나오는지…... 어느 날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엄마도 40년 넘게 김치를 담그지만 매번 맛이 다르다라고 하셔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교회에 VBS가 있어서 깍두기를 담기로 했다. ‘야매 깍두기 레시피’로 무 한상자를 후딱 담궜다. 맛있게 먹을 아이들과 교인들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았다. 빨갛게 고춧가루에 물든 무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하루 지나고 김치병 뚜껑을 열었는데 냄새부터 좀 이상했다. 깍두기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이럴수가 뭐라 말할 수 없는 이도저도 아닌 뭔가 부족한 맛이었다. 난감했다. 무 한상자를 담궜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덜익어서 그런가 해서 햇빛이 잘드는 창가에 하루 더 두었다. 다음 날 다시 먹어보니 맛이 좀 나아졌다, 다행이다. 역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김치 담그는 솜씨와 맛이 그리워진다.
<김주성(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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