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렵게 시간을 내 피정을 다녀왔다. 고해성사하는 시간이 있었고 망설이다 성사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용서하지 못하니 미움과 원망, 분노와 같은 감정을 지닌 채,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않을 고백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고민하다 마지막에 그러한 나의 감정까지 고하기로 결심하고 고해소에 들어가 말씀드렸다. 신부님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하지만 노력해야 할 문제이고, 그것으로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말씀해 주셨다.
‘사랑’과 더불어 인생의 테마 중 하나가 ‘용서와 화해’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용서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용서하는 것으로 남을 용서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고 했다. 즉 그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용서일까?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된다. 달라이 라마의 ‘용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의 용서일까? 무관심해지는 것을 용서라 할 수 있을까? 아님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의미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왜 용서를 못 하느냐? 더한 일도 용서할 수 있다면서 마치 자신이 성인이나 되는 양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론도 들어보고 관련 글들을 살펴본 후 나의 결론은 용서란 제 3자가 피해당사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문제도, 용서 여부를 판단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용서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나 사과를 할 때 피해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나 사죄 없이 자기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용서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기회조차 앗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반복해서 죄를 짓고 용서도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죄스러워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아량도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일 것이다. 우리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일도 생기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참 쉽고도 어렵다.
<강희선(SF공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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