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큰딸이 30여년 전 유치원 시절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찍은 가족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때 엄마가 피아노 레슨 하느라 큰딸이 동생을 돌봐주곤 했는데 사진 속에 동생을 바라보는 큰딸의 시선이 사랑스런 표정이었다. 딸들은 유년시절 아빠와 함께 지낸 이야기를 했다. 남편인 김박사는 항상 학업과 사업이 바쁜 가운데도 아이들을 애틋하게 돌봤다. 해외 출장시 휴가 때는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을 하면서 자식들의 견문을 넓혀주는 자상한 아빠였다. 그래서 두 딸은 중요한 일들을 아빠와 의논했고, 아빠의 지혜를 빌리면 모든 일이 척척 해결된다고 “만불박사 김박사”라고 불렀다.
문득 친정 아버님이 그리워진다. 아버님은 내가 어렸을 때 피아노 책과 책가방이 무겁다고 늘 들어주셨다. 초등 6학년 때는 중학교 입시 공부하는 나를 위해 김이 모락 나는 도시락을 학교에 갖다주셨다. 서울로 상경하는 날에는 꿀, 보약, 김장 양념을 준비해서 아들, 딸들에게 김장 담가주시고 고추장, 된장 담아주시는 그 모습이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으로 남았다.
자상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열심히 가족들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 그 존재감으로 세상 사는데 큰 힘이 되었다. 흰머리, 주름진 이마, 축 쳐진 어깨, 거친 손, 나이 드시니 힘 없어 나약한 모습 등…. 내 아이들이 성장하고 보니 집안의 가장으로 6남매 키우시느라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버님의 둘도 없는 평생 동반자 어머님을 먼저 먼 나라로 보내시고 하루하루 힘이 많이 드실텐데 자식들 걱정할까봐 표현도 안하시는 아버님의 가련한 모습에 죄송스러웠다.
김박사와 함께 아버님 모시고 외국여행시 선상에서 맛있게 저녁 드시면서 너희 엄마도 함께 왔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찡했다. 왕들이 입는 적색 곤룡포를 입으시고 사진도 찍고 좋아하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아버님 젊었을 때 오똑한 코에 쌍커풀진 큰 눈, 군대시절에는 장교로 멋진 모습이였다. 그리고 취미로 모으신 수석과 200평 되는 넓은 정원을 예쁘게 가꾸는 날에는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옛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가위로 화양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나에게 웃으시면서 다음에 예쁘게 다듬으면 괜찮다 하셨던 아버님 모습이 그립다. 고마움, 존경,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세상에서 최고인 아버님, 어머님이 보고싶다.
<이혜숙(실리콘밸리 한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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