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10월 유신으로 휴교도 하고 해서 학사일정이 꼬였던지 당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던 외골수 체육 선생님께서 필기시험도 없이 팔굽혀펴기 실기 하나만으로 한 학기 성적을 평가했다. 유달리 팔 힘이 약했던 나는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고 선생님은 동정점수도 없이 빵점을 주셨다. 겨울 방학동안 집으로 날아온 성적표에는 설마했던 “가”가 등장했고, 나는 성적표를 숨겨야 했다.
고3때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던 친구 S에게 체력장 연습이 끝난 후 체육 “가”에 대해서 울분을 토로했더니 하얗고 포근한 미소를 가졌던 그 친구 웃으면서 하는 말, “나도 빵점 받아 봤어!”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별을 그리라고 해서 예쁜 동그라미로 밤하늘을 총총하게 수를 놓았다고 한다. 선생님 왈 별을 별(*)처럼 그려야지 왠 동그라미냐며 그림 점수를 빵점을 주시더라는 것이다. 그전에도 그후에도 자기가 본 밤하늘의 별은 분명 동그라미였는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가 느낀 것을 담대하게 표현했던 용기 혹은 개성 같은 것에.
초등학교 4학년 자연시간에 달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모양이 바뀐다는 것을 처음 배우면서 너무나 당혹스럽고 창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요에도 나오는 반달 정도는 알았겠지만, 나에게 만약 달을 그리라고 했다면 당연히 “쟁반같이 둥근달”만 그렸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대가족 속에서 칠남매 중 다섯번째인 나는 식구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위치였고, 틀을 벗어나는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아이였다. 그 나이 되도록 밤하늘을 올려다볼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달이 규칙적으로 커지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상현달 하현달까지 변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표현력의 정직성 문제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나 중심이었던 세계의 중추가 살짝 외부로 옮겨가기 시작한 시점도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친구와 나 사이엔 개성과 순응, 혹은 능동적 관찰자와 수동적 수용자의 극렬한 대비가 있었다. 여유만만하고 저력있었던 친구 S는 형편상 대학을 제때 못가고 일찍 결혼해서 애도 잘 길러놓고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최고 대학의 실력있는 교수가 되어 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만 하면 학습된 가치 체계 안에서 허위의 삶을 살아가기 십상이다. 허상의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매트릭스 속의 A, B, C…처럼.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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