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미국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내가 떠나온 그날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봄이 오고 있었으나, 아직 완전한 봄이 오지 않은 시렸던 그날, 3월 2일. 아직은 젊은, 길지 않은 25년을 살아온 인생이지만, 단언컨대 그 순간이 내가 살면서 가장 슬프고 힘들었지만, 또 가장 강하고 잘한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큰 동경을 품고 살아왔던 내가 20살이 되어서야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늘 오랜 시간을 바라왔던 꿈이었지만 출국하는 그날, 나는 설레임에 행복해 할 수도, 슬픔에 눈물 흘릴 수도 없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한달 전, 어린 나이였지만 정말 많이 좋아해 마음을 주던 남자친구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별이란 걸 경험해 보았고, 떠나기 2주전, 그 해 매일 볼만큼 친했던 소중한 친구가 큰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미국 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갈 준비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아니 생각보다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공항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는 순간까지도, 지금이라도 가기 싫다고 말할까, 수백번을 고민했지만, 지금 아니면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순간을 이겨내야 할 것 같아서 묵묵히, 그리고 담담한 척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를 탔다.
11시간의 비행동안 나는 지금껏 나에게 일어난 일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에 한숨도 자지 못했고 한입도 먹지 못했다. 긴 비행과 입국심사가 끝나고 짐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한국 공항과는 다르게 적막하고 횡한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내가 혼자임을 더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미국에 와서 처음 든 생각은 내일은 있을까? 더 나아질 수는 있을까? 라는 막막함과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 그 이상이었다. 분명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살면서 한번쯤은 꼭 겪어야 할 나의 소중한 성장통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혼자였음에 외롭고 서글펐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값진 시간들을 잊지 말길.
<정지현(UC버클리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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