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자 친척 중에서도 가장 어렸던 나는 어디를 가든 언니와 오빠를 따르며 귀여움받던 게 익숙했다. 그런데 요즘은 언니와 누나 소리가 더 익숙하고 또래 모임에서 최고령을 맡는 일이 빈번해졌다. 점점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한다. 사회에서 레벨 1(Level 1) 정도인 겨우 20대 후반의 내가 나이를 운운하는 것이 우스울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고찰을 꽤 진지하게 해보았다. 변화하는 감정과 생각을 곱씹고 정돈하자 고찰의 결과는 간단했다. 나는 나이 들며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다.
물론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수련회를 가는 것이 들떠 전날 밤을 지새우던 순수했던 내가 그립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들로 MP3의 목록을 채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여겼던 소박한 내가 간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늦가을 하굣길에 불어오는 보랏빛의 가을 냄새를 맡으며 괜히 마음 부풀고 상상력 넘치던 나의 모습도, 작은 일에도 크게 일렁이던 감성 어린 나의 모습도 아른거린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감정이 크게 동요된 만큼 감정의 소모 또한 컸다. 순수하고 무지했으며 무지는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의 나는 좀 더 의연하고 초연하다. 지금이 더 좋은 이유는 꽤 다양하다.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렸다며 나름의 잣대를 세워 모든 상황을 판단하다 그 틀에 맞지 않으면 혼란스러워 했던 과거의 나보다 여유 있어진 나의 모습도 그중 하나다. 경험을 통해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으며 동시에 이해하는 법도 배운 나의 모습 말이다. 어렸을 때 봤던 영화를 커서 다시 보면 성숙한 감정과 생각이 또 다른 영화의 해석을 낳듯 지난날을 회상할 때 다르게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나의 나이가 좋다.
가끔은 너무 많이 알아버려 비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한 내가 그리워하는 예전의 나를 다시 볼 수 없게 할 것 같아 슬프기도 하지만 감정의 동요로 가끔 억지스러웠던 그때의 나보다는 덤덤히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좋다. 설렘을 쉽게 느끼며 가슴 뛰고 활기찬 그때의 내가 가끔 보고 싶기도 하지만 설렘 이외의 다른 것들이 더 소중해져 버린 지금의 내가 좋다. 꺼내기 어려운 그리움은 마음 한편에 두고 마냥 좋지만은 않은 새로운 변화를 자연스럽게 내것으로 맞이하며, 그렇게 늘어가는 나이에 나를 맞춰간다.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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