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사는 방법에 영향을 준 책이라면 네 권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코맥 매카시의 ‘로드(The Road, 2006)’가 그 하나다.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을 비롯, 2010년 타임지가 21세기 초반 10년 동안 쓰여진 100대 책 중 1위로 선정한 책이다. 작가가 70세가 넘었어도 열 살이 채 안되었던 아들과 함께 엘파소의 한 호텔에 묵었을 때, 아들이 잠든 사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오십년 혹은 백년 후면 이 마을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하였는데, 그때 불길이 일며 모든 것이 다 타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소설 ‘로드’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로드’는 온통 잿빛이다. 세상은 이미 불타버린 후이고, 회색빛 길 위에는 맑은 공기를 찾아 ‘남쪽바다’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생존투쟁만이 남아있다.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 무엇이었냐는 아들의 물음에 “오늘 아침 눈뜨는 일”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현실은 비참하지만 아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부성애가 소설을 견인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존재의 이유,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신의 목소리”인 것이다. 인용부호와 쉼표 등 구둣점쓰기를 자제하는 매카시의 문체답게 간결하고 은유가 넘치는 문장들은 시처럼 읽히지만, 폐허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 ‘로드’는 시청을 포기했는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인육을 먹기까지 잔인한 인간들의 행태를 시각화시킨 것을 볼 용기가 안났다. 또한 중간 중간 아버지의 말과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목사부부의 말을 통해 현실은 냉정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라는 미묘한 암시를’ 필름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간 남쪽바다도 이미 잿빛으로 오염되어 있다. 한계에 도달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약 인간의 사냥감이 되었을 때는 반드시 자살하라는 유언과 함께 권총 한자루를 남기고 죽어간다.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인 것이다.
‘goodness’ –선한 것에 대한 의지를 지켜낸다면 아마도 세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암시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로드’에는 사회 통념상 가치있는 기준들인 이름도 시간도 없다. 생존에 필요한 것은 ‘불을 나르는 일(물리적 필요)’과 ‘선한 의지’를 지켜내는 신념뿐인 것이다. 그외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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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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