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체온이 있듯이 사람이 하는 말 속에도 온도가 있다. 책 ‘언어의 온도’를 읽으면서 과연 내 언어의 온도는 몇 도쯤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 온도를 높여주는 쪽이었을까, 아니면 반대였을까?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언어학자는 사람, 사랑, 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분류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 단어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언젠가 나는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사과했던 경험이 있다. 누군가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었기에 할 수 있었지만, 그 한마디를 뱉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 내 아픔 속에 있는 대상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늘 사과를 생각하면 그때의 경험이 떠오르는데 누군가에게 약이 되는 사과를 했던 경험은 비록 힘들었지만, 나에게도 좋은 씨앗이 되었다고 믿는다.
성숙이라는 열매는, 어른이라는 나무는 그런 씨앗을 먹고 비로소 잘 자란다고 믿는다.
오늘도 SNS를 통해서 다양한 소식을 접한다. 그중 훈훈한 소식들에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소셜미디어가 주는 많은 부작용을 인정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오늘처럼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다양한 사람들의 나눔이 좋아서 SNS를 즐긴다. 어떤 것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 그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자기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극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목표를 향해 자신의 반응을 주도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해도 우산을 쓰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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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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