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반에 장애 학우가 있었다. 뚜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수업도 곧잘 따라갈 정도로 발달장애가 심하지 않은 친구였던 것 같다.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대놓고 피하거나 앞에서 나쁜 말을 일삼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나도 그 친구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아무도 같이 앉기 싫어해 결국 뒷좌석에 혼자 앉은 그 친구 자리 가까이에 내 자리를 배치하고는 반장인 나에게 그 친구의 학교생활을 도와주기를 부탁하셨다. 초반에는 책임감에 그 친구를 챙겨주곤 했지만 결국 학기말에는 힘에 부쳐 그 친구가 뭘 하든 방치해버렸다. 학기 내내 혼자 겉돌았던 모습이 그 친구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어느 날 미국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다 장애인이 우선으로 버스에 타고 내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얼마가 걸리던 기다려주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듯 보였다. 장애인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는 과하지 않게 친절했고 정중했다. 한국 장애인의 비율이 더 적은 걸까? 라는 바보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미국에서 장애인을 자주 마주쳤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제껏 장애인이 소수 중에서도 소수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야 장애인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한국이 정말 불편한 나라였구나를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되고 도와줘야 한다”라고 가르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실질적인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은 끊임없이 그들을 격리하고 고립시킨다. 제도적 결핍은 결국 장애인을 사회에서 생략해버린다. 그럼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들끼리 둘러싸여 장애인의 존재를 자꾸 잊게 된다.
제대로 아이를 인도할 줄 아는 선생님이 장애 학우를 지도해도 부족했을 텐데, 그 책임을 학생이고 고작 10살의 아이인 나에게 나누려 했던 것은, 사실 선생님만을 탓할 수 없다.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것이 없으니 장애인을 지도할 인력이 부족했던 것이고, 언제나 비장애인으로 둘러싸여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서툴렀던 나 또한 그 아이를 방치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미국에서 장애인이 존중받는 모습은 장애인을 불편해하던 과거의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기도, 한국이 더욱 나은 방식으로 장애인을 포용하길 바라게 한다.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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