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접한 뉴스가 한국의 동물원에서 탈출한 한 퓨마의 죽음이라니.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대전 오월드로 옮겨졌던 퓨마 뽀롱이는 평생을 갇혀 살았단다. 잠깐 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유를 맞보고 뽀롱이는 사살당했다.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었기에 매뉴얼을 따라 사살한 것을 알고 있지만 밀려드는 먹먹함과 미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죽은 뽀롱이를 박제할 예정이라는 소식에 곧 분노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같았던 것인지 논란 끝에 박제는 하지 않기로 했단다. 결과적으로 뽀롱이의 박제는 무산됐지만, 박제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 자체가 논의 거리가 된 것이 참 화가 났다. 살아생전 사람들의 구경거리였던 뽀롱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그저 한 생명체이기보다는 유형물 취급을 받은 것이다.
멀쩡한 동물들의 본능을 잠재우고 그들의 활동반경보다 훨씬 좁은 공간 안에 가둬두는 동물원은 흔히 두 가지 이유를 대며 동물원이 필요한 시설이라 주장한다. 첫번째로는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고 보존한다는 이유. 두 번째로는 자연에서 견디지 못하고 내쫓긴 약한 동물들을 사람이 교감하며 치유한다는 것. 하지만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내가 봐왔던 대다수 동물원은 그럴싸한 시설을 앞세우며 동물을 가둬두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장사하는 것 밖에로 보이지 않았다. 좋은 시설은 사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정작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들의 기준이 아니었으며, 동물원 속 동물은 자신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과 소음 속에서 가여운 모습으로 맥없이 허공만 응시했다.
뽀롱이가 마취총을 맞기 전 저주지를 배회했다고 한다. 자신이 갇힌 곳과는 달랐던 풍경을 보며 뽀롱이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철장 안에 세상이 전부였던 뽀롱이에게 잠시나마 그 풍경이 위로가 되었을지 서럽게 느껴졌을지 알 수 없다. 어렸을 적부터 가끔 동물원을 다녔던 나는 뽀롱이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하는 데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미안한 뽀롱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물원을 더 이상 가지 않는 것. 말 못 하는 뽀롱이와 같은 동물들을 위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주는 것이다. 보호하고 치유한다는 이름 아래 더 이상 동물들이 학대받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은 미안함에 뽀롱이의 기사만 연신 보게 된다.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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