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속에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이 담겨 있다. 많이 많이 보고 싶은 아버지. 추석 성묘를 간 오라버니가 동영상으로 비추어주는 아버지 산소를 보며 내 마음은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어린 내 눈에 비쳐진 아버지는 도대체 사랑이 없으셨던 것 같았다. 예술학교 시절 바싹 마른 체구에 피아노 교재, 체육복, 도시락, 책가방을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가며 버스 통학할 때에, 집 앞에 서 있는 자동차를 한번도 안 태워 주시는 아버지가 너무 미워 입이 댓발 나와서는 남몰래 타이어를 발길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반장을 해도, 일등을 해도 “거 잘했구나. 더 잘하라우!” 딸랑 그 말씀뿐. 어찌나 서운했던지. 오빠들이 늘 놀리듯이 아무래도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었다. 퇴근하시는 대문 벨 소리가 울리면 우리 다섯 형제들은 시청 중이던 TV를 끄고 방 정리를 하는데 30초도 걸리지 않아 현관 복도에 후다닥 튀어 나와 일렬로 서서 “아버지 오셨어요!” 인사 후 각기 자리에서 순식간에 모범생으로 탈바꿈했었다.
이렇게 엄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변하기 시작하셨다. 밤새 열이 펄펄 끓던 나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서둘러 가시는 아버지로 변하셨고, 웃지도 않으시고 근엄하기만 하셨기에 볼 기회가 없어 아버지는 치아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첫 손주를 안으시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시며 싱글벙글하시는 아버지로 변하셨다. 급기야 결혼식 다음날 집에서 뵈었을 때에는 아버지 눈이 부엉이 눈으로 변하셨다. 집안에서 큰 어른이신 아버지가 꺼억꺼억 우시니 삼촌들과 오빠들이 다 따라 울었다고 작은 어머님이 살짝 일러주셨다. 나를 결혼시키고 부엉이 눈이 되도록 우셨다는 것에 너무 놀라 나 역시도 신혼여행지에서 밤새 울었던 기억이 있다.
폐암 투병중인 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갔을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또 변하셨다. 잠을 자다 이상해서 눈을 뜨니, 아버지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으셔서 내 얼굴을 쓰다듬고 계셨다. 정말 나를 울리도록 변하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셨다. 이젠 더 이상 변한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시는 아버지.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는 겉사랑도 속사랑도 많으신 아버지로 지금도 여전히 변해가신다. 아! 아버지, 정말 그립습니다!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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