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자주 가는 곳! 내게는 당연 꽃시장이다. 다운타운인 SOMA의 중심(6가와 Brannan)에 자리잡고 있지만 프리웨이에서 가깝고 파킹 공간도 넉넉해서 스트레스 없이 꽃구경을 실컷 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꽃들이 온실에서 재배되고, 또 외국에서 수입되는 꽃들도 많아 사시사철 꽃들이 풍성하지만, 그로서리마켓 꽃 코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제철 꽃이나 나뭇가지들이 앞서서 계절의 변화를 전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단풍이 들기 시작한 오크 가지와 각종 열매들, 그리고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게 색감도 예쁘고 모양도 특이한 호박들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오개닉 열풍이 예외없이 꽃에도 불고 있어 갈 때마다 사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는 가든 로즈는 온실 장미보다 몇 배로 비싸지만 꽃잎의 모양이나 색, 그 향이 비교도 안되게 환상적이고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비싼 값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에 필이 꽂혀서 서양 꽃꽂이와 이케바나까지 내친 김에 자격증도 세 개를 땄다. 처음엔 꽃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 디자인 원리에 딱 맞는 색과 모양, 또 질감의 꽃을 찾아 머릿속으로 조합을 해보며 다니느라 새벽에 가서 문 닫는 시간까지 꽃구경을 하곤 했다. 몇번씩 마주치게 되는 이들과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이심전심의 미소를 서로에게 선물하는데, 꽃시장에서는 누구나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메인 꽃과 디자인을 미리 정해서 가는 요즘도 두세 시간은 금새 지나가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꽃꽂이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어카운팅 같은 곳에 투자했으면 좋았을걸 후회도 하면서, 명품 가방을 탐하는 것보다 그래도 꽃이어서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새발의 피겠지만 보충한답시고 커피와 과자를 건너뛰곤 한다.
1956년부터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꽃시장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고 Kilroy Realty라는 개발회사에 의해 고급 콘도로 바뀌게 된다. 다행히 벤더들하고 협상이 잘되어 지하에 자연채광을 갖춘 꽃시장이 마련된다고 하는데 그땐 훨씬 팬시해지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자유롭고 풍성한 재래시장 같은 꽃시장은 아닐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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