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시며 흥얼거리는 가락이 낯익다. 음대 진학을 위해 6개월동안 같은 곡을 매일 7-8시간씩 연습을 하니 엄마는 아마도 그 어려운 곡을 다 외우신 듯하다. 이웃집과 가장 떨어진 부모님 방에 피아노를 옮겨 놓고 두 분이 주무시든, 안 주무시든 나는 자정이 넘도록 피아노를 두들겨 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베토벤의 천둥소리에 어떻게 주무셨을까 그저 죄송하기만 하다. 입학시험 날, 시험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수험생들의 연주를 들으시고 “너 23번째로 연주했지?” 족집게처럼 내 소리를 아셨던 우리 부모님. 그 시절에는 내 입학시험 곡이 우리 엄마의 멜로디였다.
남편과 함께 걸을 때면, 평소에 손이 찬 나는 가장 따뜻한 온실인 그의 주머니에 두 사람의 손을 함께 푹 찔러 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남편의 팔짱을 낄 때에는 남편도 자세가 좀 달라지며 무언가 준비를 한다. 바로 결혼행진이다. “딴 딴따단 딴 딴따단” 처음엔 겸연쩍어하더니 이젠 남편도 음을 함께 읊조리며 신부의 발걸음을 기다려 주는 제법 멋진 신랑의 모습을 자아낸다. 이 정도면 남편과 다시 결혼식을 한다 해도 떨지 않고 실수없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35년동안 결혼 행진곡은 그렇게 우리 부부의 사랑을 엮는 귀한 멜로디가 되고 있다.
돌이 갓 지난 딸아이가 유난히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다. 바로 ‘나비야’이다. 이 동요를 부르다 살짝 ‘송아지’로 바꿀라치면 어느새 알고는 다시 ‘나비야’를 부르라고 떼를 쓴다. 엉덩이를 흔들며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느라 나는 ‘나비야’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유아기 시절 딸아이와 리듬에 맞추어 함께 걷던 곡조가 있었는데, 그 멜로디를 참 좋아해서 내가 부르기만 하면 깔깔거리며 해맑게 웃던 딸.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딸과의 흥겨운 멜로디이다. 자기도 아이를 낳으면 똑같이 할 거란다. 딸과의 멜로디가 가통으로 이어진다니 나는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과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 중에 단연코 1호 선물은 음악이다. 내 영혼 깊숙이 솟아나는 내면의 멜로디에는 기쁨, 감사, 사랑, 애절한 기도가 살아 숨쉰다. 소망하기는 나의 멜로디와 가족, 이웃의 소리가 어우러져 덧입혀진 아름다운 화관을 지어 이 다음 저 천성에 올라가 주님께 선물로 돌려드리고 싶다.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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