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L.A.로 가는 기내에서 다큐멘터리 ‘펭귄의 행진’(2005)을 다시 보았다. 프랑스의 뤽 자케(Luc Jacquet)이 감독한 기록영화인데 그즈음 좋은 영화라고 해서 영화관에서 보았었다. 원래 ‘동물의 왕국’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졸면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 건성건성 넘어간 것을 완결해보자 싶어 다시 골랐던 것이다.
펭귄 중에서 가장 큰 종인 황제펭귄에 대한 기록인데 비록 작은 화면이지만 눈앞에서 자세히 보니 짧지만 잔잔한 깃털이 펭귄이 새에서 진화한 것임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까만 등과 하얀 배의 대비가 깔끔하긴 하지만 수채화 물감으로 색을 넣은 듯 목 주변으로 노란색이 살짝 퍼져 있어 단조로움을 피해간 모양이 정말 귀여웠다.
남극의 겨울은 3월과 4월이라고 한다. 황제펭귄들은 일년에 한번 짝짓기를 해서 한 개의 알을 낳는다는데 하필이면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그 겨울에 단단한 얼음 바닥에서 얼음벽을 방풍 삼아 알을 낳고 부화시킨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발등에 알을 올려놓고 털주머니로 덮어서 부화시키는데 부모가 번갈아 가며 품었다. 한쪽이 바다로 가서 양식을 먹는 동안 알을 품고 있는 쪽은 며칠에서 몇주동안 꼼짝 안하고 알을 지키고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는데, 발등에 알을 올려놓고 눈보라를 맞으며 꼼짝않고 서있는 모습이 자식을 대하는 내 마음자세와 꼭 같아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거북이 모형’이라는 군집생활을 하는데 비교적 어린 청소년 펭귄들을 가운데에 두고 보호하는 것도 우리네와 비슷했다.
L.A.에서 혼자 떨어져 지내고 있는 둘째를 보기 위해 두 달만에 다시 방문하는 길이었다. L.A.서 태어나서인지 그곳이 더 다이내믹하고 좋다며 반대를 무릅쓰고 몇년째 혼자 살고 있는 둘째는, 남의 일만 하며 자기의 이십대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전적으로 음악만 한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계획대로 되질 않아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름에 봤을 때 살이 많이 빠져서 가방 가득 엄마표 음식을 채워갔는데, 사실 내가 해 줄 수 있는 한계는 고작 거기까지였다. 알을 깨고 나온 후 생존의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가야 하는 것이기에 안타깝지만 나는 펭귄처럼 발등에 새끼를 얹고서 눈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바람막이로 버텨내는 것. 다시 말해 있어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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