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가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게티 뮤지엄에 가서 반 고호가 죽기 1년 전 생레미의 정신병원 뜰에서 그렸다는 아이리스(1889)를 본다. 그는 죽기 3년 전부터 아이리스 그리기에 몰두했는데, 불안한 영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형태와 의미를 가진 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게티에 있는 그림은 흙과 같은 눈높이에서 화면 전체를 지평선도 없이 꽃으로 가득차게 그려서, 마치 꽃밭 앞에 서있는 것처럼 시선을 붙잡아둔다. 신선한 녹색의 줄기와 잎사귀들이 땅에서부터 마구 솟아 있는 모습은 일견 무질서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색의 흙 색깔부터 윗쪽 노란색 꽃 배치까지 그가 얼마나 색상 배합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가 있다. 푸른 아이리스들 왼편으로 흰색 한 송이가 그려져 있고 그 때문에 고호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10여년 화가생활 동안 2,100 여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생전에 팔린 그림이라고는 딱 한 점밖에 없었던 고호가 얼마나 고독하고 정신적으로 공허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양과 색상이 특이한 아이리스를 개인적으로 꽃꽂이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노지에서 자란 만개한 아이리스는 그 하나만으로 모든 꽃을 압도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꽃하고 섞으면 특유의 형태와 질감이 방해를 받을 것 같아서다. 줄기의 선으로 3D 공간을 표현하는 이케바나에 사용하기에는 줄기와 잎이 너무 뻣뻣하게 뻗어 있어 줄기 꽃임에도 불구하고 예쁘지가 않다. 신부 부케로 푸른 아이리스를 사용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보조꽃 색 때문에 고민을 했었다. 메인과 보조꽃 양쪽을 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보색을 사용하기로 하고 꽃잎이 자유롭고 부드러운 노란 가든 로즈를 섞어 둥근 부케를 만들었다. 푸른 아이리스의 배경색으로 갈색이나 노란색을 주로 사용한 고호의 그림들을 보며 내 선택에 대해 흐믓한 기분을 가지곤 한다.
붓꽃이라는 정감있는 한국 이름을 가진 아이리스는 무지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신들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했던 무지개 여신의 이름이기도 한데 ‘좋은 소식’이라는 꽃말은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노지에서 자라 꽃송이가 큰 수염아이리스를 한아름 화병에 꽂아두면 내게도 좋은 소식만 끊이지 않고 들려오게 될까? 바라건대 내 두 아이가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만 듣게 되기를…!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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