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계절은 이른 봄, 투명한 얼음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조춘이다. 좋아하는 색은 코발트 불루로 변함이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꽃은 너무 많아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특히 봄에 피는 꽃들은 거의 다 좋아하는데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모란이 될 수 있을까?
“빛이 꿈꾸는 다이아몬드라면/ 소리가 꿈꾸는 웃음이라면/ 향기가 꿈꾸는 꽃이라면/ 그 빛과 향기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침내 이루는 보석도 있나니/ …함빡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는 꽃/ …꽃들의 꽃이 거기 있나니.” 오세영의 ‘함박꽃’이라는 시이다.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행복한 웃음이 활짝 필 것 같은 보석같은 꽃 함박꽃은 모란의 우리말이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은 봄의 절정을 상징하는 꽃으로 삶의 보람과 목적까지가 다 꽃에 귀결되고 있어 굉장히 화려하고 운명적인 꽃 같은데 함박꽃은 훨씬 소박한 느낌을 준다. 구양수는 시에서 다른 꽃들은 이름이 필요한데 모란은 이름없이 그냥 “꽃”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할 정도로 모양과 향기가 아름다워서 꽃 중의 꽃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영어 이름 Peony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질투를 받아 위험해진 제자 파에온(Paeon)을 제우스 신이 꽃으로 변화시켜 구해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란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발전시켜 공식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종만 해도 33종이나 된다. 얇고 작은 꽃잎이 여러겹 겹쳐 있어 공처럼 둥글어 함박꽃이라는 이름에 꼭 맞는 종류도 있고, 약간 네모난 꽃잎 가운데 노란 꽃술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아네모네처럼 보이는 모란도 있고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지금 모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봄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모란을 삶의 원동력으로 생각했던 김영랑 시인의 마음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모란을 사랑한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 선조들도 모란을 귀하게 여겼는데 아쉽게도 한국은 꽃을 재배하고 발전시켜 나간 역사가 빈약하다. 특히 꽃꽂이 역사를 보면 꽃꽂이는 중국을 통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몇 백년동안 꽃꽂이를 연구하고 디자인 원리를 계승해서 이케바나라는 고유한 문화로 발전시킨 일본에 비해 한국은 그런 문화를 형성시키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작은 꽃 하나에 일생을 걸기엔 우리 선조들은 너무 대범했었나 보다.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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