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쏙 빼놓는 아침, 오늘도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 ‘빨리 가서 커피 마셔야지’ 하는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침에 조용히 커피를 내리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어느새 10월의 끝자락, 돌아보니 올해도 두 달 남짓 남았다. 나의 시계는 아이들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알람시계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지루함도 느낀다. 그런데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무엇인가 배우고 있는데 얼마큼 자라고 있는지 보이지 않을 때의 막막함…. 그때는 콩나물시루를 생각한다. 물을 부어도 부어도 계속 빠져나가기만 하는 콩나물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보란 듯이 잘 자라는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콩나물 자라듯 자라고 있을 것이다. 인내는 풍부함에서는 별로 요구되지 않는다. 부족할 때 비로소 빛을 발휘한다.
오늘도 스무명의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추며 “굿모닝!” 하시는 아이의 선생님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그렇게 많은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기분 좋은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하루를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말은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세워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동안 유일한 소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헬렌 켈러가 세운 사흘의 계획을 보면 우리가 쉽게 누리는 일상의 한 풍경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시간은 평생 꿈꿔온 시간이었다. 우리가 마지못해 하는 많은 일이 누군가에겐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걸 생각한다면 우리는 조금 감사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 사실 내 이야기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서 그동안 밀린 이야깃주머니를 하나씩 풀어놓는 시간이었다. 매일 우체통 열어보기를 선물 기다리듯하며 배달된 따끈따끈한 신문을 펼치고 좋아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보람도 느꼈다. 13주 동안 헬렌 켈러가 고백한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거운 시간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긴 여정이라 생각하며 떠난 여행을 끝내며 소풍처럼 즐거웠노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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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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