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이맘때 쯤이었다. 바느질 수업의 첫인상은 맛있는 음식과 푸짐한 수다가 있는 곳이었다. 첫날이라 다른 언니들의 작품 진행 상황을 그저 구경하며 감탄과 어색함을 잘 섞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점심 때쯤 ‘우리 배고픈데 열무 김치에 밥 비벼 먹을까?’ 하시고는 잘 익은 열무김치에 밥과 고추장을 담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썩썩 비벼 주셨다. 그야말로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에 소복하게 떠 입에 넣으며, ‘아. 여기다. 내가 있을 곳은!’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사람들을 한꺼번에 여럿 볼 일이 거의 없던 나에게는 이렇게 좋은 언니들이 한꺼번에 생기고 게다가 마흔 줄에 가까운 나를 막내라 불러주며 귀여워 해주시기까지....한국의 가족들에게서만 받을 수 있었던 호사를 이곳에서도 받게 되다니, 첫날부터 바느질 수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에서 받아들고 온 비단 조각들을 한땀 한땀 바느질 하고 있자니, 나도 모를 고요함이 찾아왔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손놀림에는 이상하리 만큼 나를 진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어린 아들이 잠든 뒤에 좋아하는 한국 TV 프로그램을 하나 틀어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를 보살피며 보내는 정신없는 낮 시간과 대비되는 정적인 나만의 시간이다.
한국의 비단은 보면 볼수록 예쁘다. 특히 빛이 들어 차는 창가에 걸어두면 내가 밉다 밉다 했던 천이 빛을 받아 또렷한 예쁜 색이 되고, 예쁘다 예쁘다 했던 천이 존재감을 잃기도 하는 변화무쌍함을 나에게 보여준다. 시시각각 빛에 따라 변하며 어우러지는 그 멋을 알게 되어, 나는 창가에 거는 발에 푹 빠져 버렸다.
그러나 바느질도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일들처럼, 타고난 감각 또한 필요한 분야였다. 그냥 눈이 밝아 바늘 땀만 잘 찾으면 될 줄 알았는데,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그 결과물에서 차이가 나는,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세상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도, 감각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같이 평범한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바늘을 잡고 있는 사람이 되어 보리라.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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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씨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살았지만,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육아에 충실하다 다시 둘러본 세상에는 너무나도 재미난 취미생활들이 있어서 그 취미에 푹 빠져 사는 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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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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