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스탠포드에서 열렸던 조성진의 피아노 콘서트에 다녀왔다. 조성진이 첫 곡으로 선택한 드뷔시의 영상 1집 중 물에 비친 그림자를 시작하는 그 순간, 마치 전 곡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진 기분이 들어 짧게 터져나오는 탄성을 조용히 삼키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콘서트가 중반 이후에 접어들었을 무렵 조성진이 완벽하게 연주하는 그 아름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피아노가 가진 그 정확하고 정교한 음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들은 마지막 곡인 쇼팽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순간까지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연주회를 할 때마다 공연장의 마이크를 체크하고 심지어는 그날 온도와 습도가 어떤 지, 공연을 앞두고 새 줄로 조율한 내 가야금의 줄 상태는 어떤 지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야금은 흔히 자연을 담은 악기라고 한다. 좋은 악기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 30년된 이상 된 조선오동나무를 선별하여 자연 상태에서 비바람과 눈, 햇빛 등을 맞도록 최소 5년 이상을 놔두고 삭힌 후 그중에서 울림이 좋은, 치밀한 밀도를 가진 나무를 골라 손대패로 밀고 또 밀어 원형을 잡은 후에 인두질로 마감하고, 질 좋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많게는 80가닥 이상을 꼬아 기러기발 모양을 닮은 안족 위에 올려 그 울림이 오동나무에서 호도나무나 벚나무로 만들어진 안족을 타고 손끝에서 퍼져나가도록 한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최초의 악기 제작방식에서 큰 변화없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이 악기는 서양악기에 비해 비교적 열과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팽팽했던 줄은 수많은 연습을 거치며 느슨해지고 처음의 맑고 고운 소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둔탁해지기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연주 중에도 농현을 해서 줄이 조금 늘어나면 안족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조율을 해야 한다.
스타인웨이(피아노 브랜드)의 완벽한 음에 대한 부러움은 잠시 묻어두고, 이런 번거로움에도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에서 태어난 가야금이야말로 자연을 닮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훌륭히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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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씨는 국립국악고,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8세에 가야금을 시작, 10세에 KBS 라디오로 데뷔해 독주회와 국악단 협연, 해외 초청 연주 및 POP-Band 등과의 최초 콜라보레이션 연주 등 전문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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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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