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기빙, 미국에 와서 살면서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날이다. 이웃들은 모두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는 이날을 위해 칠면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 가족은 땡스기빙 때면 몇 년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몇 년은 여행을 가기도, 또 몇 년은 타국에 와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들과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부모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추석만 하랴. 명절 제사를 준비하며 온 집안에 풍기던 기름진 전 냄새, 오색 나물, 몇날 몇일을 먹어도 물리지 않던 명절 음식이 그리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어찌 보면 고상하고 어찌 보면 괴상한 취미가 하나 있다. 감정이 지나치게 폭발할 때 꼭 듣는 음악이 있는데 복받치는 내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종묘제례악’을 듣는 것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선대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에서 살아있는 왕이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시대 국가에서 지내던 가장 큰 행사의 음악이다.
이 종묘제례악은 ‘영신, 전폐,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음복, 철변두, 송신, 망료’의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신을 영접한 후 즐겁게 맞이하고 다시 신을 보내주는 의식이다. 단순히 제사만을 지내는 것이 아니라 궁중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64명의 무용수들이 8명씩 8열로 서서 아주 절제된 ‘일무’ 즉, 팔일무를 추는 예와 악과 무가 하나가 된 의식이다. 각 의식에는 다섯자, 또는 네글자로 이루어진 한자로 된 노래를 부르는데 영신례에 나오는 ‘숙숙천명인(肅肅薦明禋) 수아뇌사성(綏我賚思成)’처럼 ‘엄숙하고 법도에 맞게 제사를 드리오니 우리를 편안하게 하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와 같이 매 의식마다 그 의미가 있는 한자 가사가 있다.
종묘제례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국립 국악고 재학 시절로 당시 봄과 가을 두차례 64명의 학생들이 종묘와 성균관에서 종묘제례와 문묘제례를 위한 일무를 추었고 덕분에 나 또한 일무를 추기 위해 동작을 익히고 음악을 익히면서였다. 상월대와 하월대로 나누어 하는 연주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고 일무는 사람을 상징하듯 단순 제례의식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를 상징하는 음악이기에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나를 치유하는 음악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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