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져 커피 한잔을 내려 뒷마당으로 나갔다. 저 멀리 자욱한 안개가 가득하고 두 뺨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감사하다. 캘리포니아의 가장 북쪽 레드우드 주립공원으로 온 추수감사절 여행 삼일째 아침, 이곳에서의 시간은 평상시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 하루 하루가 아쉽기만 하다.
여행 오기 전 베이지역은 뷰트 카운티에서 난 최악의 산불로 인해 학교가 휴교를 하고 마스크가 동이나는 비상사태였다. 비가 오지 않아 바싹 마른 지역의 산불이 만들어 낸 연기는 동쪽에 발달한 고기압과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 사이에 갇혀 베이지역을 최악의 공기로 덮은 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일주일 넘게 야외 활동을 할 수 없던 아들의 지루함은 극에 달했고 알러지와 나쁜 공기로 인해 기침과 가래로 밤잠을 설친 지 한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던 차에 친구 가족과 함께 온 귀한 여행이었다.
알고 지낸 지 이제 20여 년이 넘은 선배와 이제는 절친이 되어버린 그의 아내, 내 아이만큼이나 예쁜 천사같은 아이까지, 타향에서 살아가면서 기쁜 일도 어려운 일도 함께 나누는 우리 두 가족은 이번 탈출 여행까지 함께하며 이제는 전우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기 청정기며 가습기, 각종 비상약까지, 만반의 준비로 이민 가방 버금가는 짐을 싸들고 왔건만, 레드우드 숲의 맑고 촉촉한 공기로 인해 모두들 잠도 잘 자고 기침도 하지 않는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나무 향 가득한 공기에 코와 목이 편안하고, 장화를 신고 찰박거리며 시냇물에 바지를 적신다. Fern Canyon에서 쓰러진 나무를 징검다리 삼아 다니느라 물에 첨벙 빠져도, 옷을 흠뻑 적셔도, 잔소리는커녕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이번 기회에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공해를 태평양 건너에 사는 우리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깨끗한 공기, 깨끗한 땅과 물, 이런 것들이 오염되거나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앞의 이 울창한 나무들에게 눈물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꿈 같던 자연 속에서의 4일을 어느새 다 보내고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울창한 레드우드 사이를 같이 걸었던 우리의 우정과 마음껏 숨쉬었던 이 숲이 영원하기를, 나중에 세월이 흘러 나의 아이가 그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시냇물을 건너 다니고 달팽이를 만져 보는 그림을 그려본다.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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